2025.11.26 문명 만들기

질문

“상상 속에 아주 독특한 문명을 하나 만들어주세요. 이 문명은 우리가 아는 과학 법칙과는 조금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문명이 시간이 흐르면서 직면하게 될 가장 어려운 철학적, 사회적, 기술적 도전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그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이 문명이 어떤 식으로 사고를 발전시키고,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 길게 설명해 주세요.

Gpt 5.1 thinking

먼저 문명을 하나 통째로 만들고,

그 문명이 부딪히는 “최악이면서도 최고의” 위기까지 한 번 끝까지 밀어볼게요.

1. 세계 설정 – “관계가 물리 법칙인 우주”

이 문명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에 딱 두 가지가 다릅니다.

(1) 관계 보존 법칙

이 우주의 기본 입자들은 질량, 전하, 스핀 같은 것 말고도

  • *“관계도(關係度)”**라는 물리량을 하나 더 가집니다.

  • 어떤 두 개의 물체가 상호작용을 하면

    • 그 사이에 관계선이 생깁니다.
    • 한 번 생긴 관계선은 절대 0이 되지 않습니다. (완전한 단절이 물리적으로 불가능)
    • 이후 A가 상태를 바꾸면, 아주 미세하게나마 B에게도 패턴이 전달됩니다. (느리고 희미하지만, 실제 물리 효과)

그래서 이 우주에서는:

  • “한 번 같이 밥 먹은 사람” 사이에는 정말로 약한 물리적 동조가 생깁니다.

  • 부모–자식, 연인, 오래된 스승–제자 사이에는 세포 수준까지 패턴 공명이 생깁니다.

  • 도시, 회사, 공동체도 일종의 거대한 관계 네트워크로 동작합니다.

이걸 이 문명 사람들은 나중에 물리학 용어로 이렇게 부릅니다.

관계 보존 법칙:

어떤 상호작용도, 그 흔적이 되는 관계를 완전히 지울 수 없다.

(2) 다양성 압력(Entropy 대신 “Histropy”)

우리 우주에선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간다고 보죠.

이 우주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 시스템은 “무질서 증가”가 아니라

**“공존 가능한 다양한 패턴의 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이걸 그들은 **역사-엔트로피 → 히스트로피(histropy)**라고 부릅니다.

    • 가능한 “역사들의 가지 수”가 많아지는 방향으로 우주가 흘러가려는 특성.

그래서:

  • 완전히 일원화·획일화된 체제는 자연스럽게 불안정해지고, 우발적 사건이 터져서 다양성이 다시 증가합니다.

  • 반대로, 다양한 패턴이 적절히 공존하면 에너지 효율, 안정성이 동시에 좋아집니다.

2. 이 문명의 등장 – 리네안인들

이 세계의 대표 문명을 **리네안(Linnean)**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초기 리네안인들은 당연히:

  • 벼농사 같은 걸 하며 계절을 관찰하고

  • 별자리와 날씨를 연결하고

  • “사람 사이의 인연”을 신비한 것으로 여기는 매우 인간적인 농경 문명에서 출발합니다.

다만, 그들의 경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이상한 일들이 반복됩니다.

  1.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 예전에 서로 싸웠던 두 도시는
    • 기압 변화, 전염병, 정치적 폭동 패턴이 기묘하게 “동시에” 일어납니다.
  2. 결혼과 입양을 통해 가문이 연결되면
    • 질병 양상, 창의적 재능, 심지어 악몽의 내용까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비율로 서로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3. 어떤 스승과 제자가 평생을 함께하면
    • 연구실에서 떨어져 있어도
    • 실험이 같은 날 비슷하게 실패하거나, 동시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초기에는 이것을 **“정령, 조상, 신들의 장난”**으로 해석하지만,

리네안들의 특성은 이상 현상을 그냥 신비로 놔두지 않는 집요함입니다.

3. 관계물리학의 탄생

(1) “우연이 아니야”라고 믿은 몇 명의 괴짜들

한 시대에, 유난히 숫자와 패턴에 집착하는 학자 집단이 나타납니다.

  • 서로 아예 다른 대륙에 있는 도시들의 병원 기록, 농사 기록, 범죄 기록을 수십 년치 모읍니다.

  • “한 번 직접 전쟁하거나, 대규모 교역을 한 도시 쌍”과 “한 번도 접점이 없던 도시 쌍”을 비교합니다.

결과는 너무 극단적입니다.

  • 상호작용이 있었던 도시들 사이에서는

    • 전염병 곡선, 폭동 주기, 경제 호황/불황 패턴이 시간차를 두고 “리듬”처럼 통계에 찍힙니다.
  • 접점이 없는 도시들 사이에서는 그런 리듬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처음엔 이걸 “보이지 않는 무역, 비밀 조직”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어떤 쌍은 정말로 물리적으로 연결될 수 없는 거리인데도 패턴이 이어집니다.

(2) 실험 – 관계선의 직접 관측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 두 개의 동일한 수정 결정에

    • 하나는 강한 충격과 열을 가하고
    • 다른 하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보관합니다.
  • 단, 충격을 주기 직전에 두 결정을 특수한 공명 장치로 “강하게 상호작용”시킵니다.

그러자:

  • 충격을 받은 결정은 당연히 내부 구조가 변하지만

  • 멀리 있던 결정의 미세 구조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동일한 패턴으로 왜곡됩니다.

이 실험이 수천 번 반복되고, 다른 연구소에서도 복제되면서

리네안 문명은 공식적으로 **“관계 보존 법칙”**을 받아들입니다.

4. 관계를 엔지니어링하는 문명

관계가 물리량이라면,

당연히 다음 단계는 **“관계를 설계하는 기술”**입니다.

(1) 관계 공학

리네안들은 다음과 같은 기술들을 발전시킵니다.

  1. 결속로(Binder)
    • 물체들, 혹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선을 일시적으로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장치.
    • 결혼식, 동맹 조인, 스승–제자 맺기 같은 의식을 이 기계와 함께 수행하면 그 관계가 정말로 물리적으로 깊어집니다.
  2. 관계 단열막
    • 특정 공동체를 외부와의 관계로부터 “약하게 절연”하는 필드.
    • 격리 병동, 교도소, 극비 연구소, 수도원 등에서 사용.
  3. 도시 공명 설계
    • 도시를 짓거나 회사 조직을 설계할 때 사람들 사이의 실제 관계 네트워크를 그래프 이론처럼 분석해서,
    • 사고, 전염병, 폭동이 특정 경로로만 퍼지고, 전체 공명은 최소화되도록 설계.

이 기술들은 초기에 문명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킵니다.

  • 전염병 확산을 늦추고

  • 전쟁 시 적 도시와의 관계선을 의도적으로 약화해 심리적·경제적 타격을 줄이고

  • 혁신 집단 내부의 결속을 강화해서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끌어올립니다.

5. 거대한 도전 ① – “나는 어디까지 나인가?”

관계가 물리라는 사실이 정착되면서

이 문명은 피할 수 없는 철학적 위기를 맞습니다.

(1) 책임과 자유 의지의 붕괴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 생깁니다.

  • 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 조사해보니, 그 사람은 폭력적인 집단과 과거에 깊게 연결되어 있었고
    • 어릴 때부터 강한 트라우마 관계선을 가진 가족, 교사, 동네 어른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 그 모든 관계선의 패턴이 지금의 폭력적 충동을 계속 공명시키고 있었습니다.

즉, 물리적으로 보면:

이 범죄는 한 사람의 “악한 선택”이 아니라,

전체 네트워크가 쌓아온 패턴의 귀결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튀어나옵니다.

  • “그 사람만 처벌하는 게 정당한가?”

  • “네트워크가 이렇게 압도적인데, 개인의 자유의지는 진짜 있는가?”

  • “죄와 벌은 어디까지 개인, 어디부터 구조의 몫인가?”

리네안 철학자들은 세 가지 극단으로 갈라집니다.

  1. 강한 결정론파
    • “개인은 네트워크의 국소 표현에 불과하다.”
    • 형벌은 의미 없고, 관계 구조만 뜯어고쳐야 한다.
  2. 극단적 개인주의파
    • “네트워크가 어떻든, 최종 결정은 항상 개인의 것.”
    • 관계 물리는 ‘환경’일 뿐, 책임은 100% 개인에게 있다.
  3. 분산책임파
    • “행위는 국소적이지만, 인과는 분산되어 있다.”
    • 책임도 스펙트럼처럼 나눠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어느 쪽으로 가도 문제가 생깁니다.

  • ①로 가면: “난 네트워크 탓이야”라는 책임 회피가 만연.

  • ②로 가면: 관계 물리를 무시하는 “도덕적 과학부정론”이 늘어남.

  • ③은 이론적으로 그럴듯하지만, 법·제도·심리적으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2) 새로운 자아 개념 – “경계가 흐린 자아”

수 세기에 걸친 논쟁 끝에,

리네안 문명은 자아를 이렇게 재정의합니다.

자아는 고정된 덩어리가 아니라,

관계 네트워크 위에 떠 있는 “국소 파동 패턴”이다.

  • 나는 나 혼자 고립된 점이 아니라,

    • 가족, 친구, 동료, 과거의 나, 미래의 가능성들과 지속적으로 패턴을 주고받는 파동의 중첩.
  • 이 파동이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지점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나”라는 인격.

이 관점에서 책임은 이렇게 바뀝니다.

  1.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은
    • 네트워크 전체가 만든 경향 위에 서 있지만,
    • 그래도 국소 파동으로서 조정 가능한 여지를 가진다.
  2. 윤리란
    •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미세 조정들을, 미래의 네트워크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틀어주는 기술”이다.

그래서 이들은 법체계를 이렇게 재구성합니다.

  • 형벌 자체는 최소화하고

  • 대신,

    • 가해자와 피해자, 주변 관계망을 공학적으로 재구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 “관계 재배선(rewiring)”이 사법 시스템의 핵심이 됩니다.

6. 거대한 도전 ② – 관계 과잉 연결과 문명 붕괴 위기

문명이 발전할수록, 리네안들은

“연결이 곧 힘”이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 더 많은 도시를 하나의 무역 네트워크로 묶고,

  • 전 대륙을 아우르는 관계 인프라를 깔고,

  • 각 개인의 기억, 감정, 지식까지 관계선 증폭 장치로 서로 결속합니다.

(1) “도시-두뇌 프로젝트”의 폭주

어느 시대에, 리네안 최고 기술자들은

이런 야심 찬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우리 전체 문명을 하나의 거대한 두뇌처럼 묶자.”

  • 모든 도시, 기관, 연구소를 고속 관계 증폭기로 연결하고,

  • 전 행성 규모의 집단 의식 네트워크를 만들어 상상 이상의 문제 해결 능력을 얻겠다는 계획.

처음에는 기적 같은 성과가 나옵니다.

  • 난치병 치료법,

  • 기후 조절 기술,

  • 우주 항해 기술이 몇십 년 안에 연달아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 신호가 발생합니다.

  1. 동시적 광기
    • 서로 전혀 다른 문화권 도시들에서 비슷한 형태의 집단 우울, 광신, 폭력이 거의 같은 주기에 동시에 나타납니다.
  2. 창의성의 급격한 감소
    • 새로운 아이디어 수가 문명 전체에서 서서히 줄어듭니다.
    • 대신, “비슷한 생각만 조금씩 변주된 형태”로 반복됩니다.
  3. 관계 공명 폭발
    • 네트워크의 한 부분에 일어난 작은 사건이 전체 문명에 파동처럼 퍼져 경제·정치·정신 건강이 동시다발적으로 교란되는 현상.

결국, 어느 해에 거대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 자연재해 + 정치적 암살 + 네트워크 결함이 같은 시기에 겹치면서,

  • 행성 전체가 관계 공명 폭발 상태에 빠집니다.

    • 시장 붕괴, 폭동, 종교적 집단 광기, 집단 자살 시도,
    • 동시에 비정상적인 창조성 폭발(새로운 예술·이단 사상 난립)까지.

문명은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회복합니다.

7. 이 위기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 “연결의 폭력성”

사건 이후, 리네안 사상가들은 이런 통찰에 도달합니다.

  1. 관계는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 “연결 = 선”이라는 믿음이 문명을 거의 파괴할 뻔 했다.
  2. 과도한 밀도와 동조는
    • 다양성 압력(히스트로피)와 정면충돌한다.
    • 우주는 본능적으로 다양한 패턴의 공존을 선호하는데,
    • 문명은 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수렴하려 했다.
  3. 그 결과,
    • 우주 스케일의 “되돌림 힘”이 작동한 듯이 폭발적 불안정성이 터져 나왔다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이 현상을 이렇게 부릅니다.

관계 폭력(Connectivity Violence)

“서로를 돕기 위해 만든 연결이,

결국 서로를 동일한 운명으로 끌고 가며

다양성과 자율성을 파괴하는 현상.”

8. 거대한 도전 ③ – 기술적 재설계: 느슨한 연결 아키텍처

관계 폭력의 시대 이후,

리네안 문명은 기술과 사상을 동시에 갈아엎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1) 기술적 해법 – 느슨한 연결(Loose Coupling)

이들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서 말하는 개념과 비슷한 것을

문명 전체에 확장합니다.

  1. 계층적 공명 구조
    • 전체 네트워크를 하나의 덩어리로 묶지 않고,
    • 서로 다른 진동수·리듬을 가진 “층”으로 나눕니다.
      • 개인 → 가족/친구 소집단 → 도시 → 연합 → 행성 전체
    • 각 층은 자신만의 속도로 변화하고, 상위/하위 층과는 필터링된 정보만 공명시킵니다.
  2. 지연과 완충 장치
    • 사건이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전파될 때 일부러 **지연(delay)**를 넣습니다.
    • 즉각적인 전 행성 실시간 동조 대신, 각 지역이 시간차를 두고 반응하게 만들어 공명 폭발을 막습니다.
  3. 관계 방화벽
    • 일부 관계선은 아예 **“단방향”**으로만 작동하게 제한.
    • 예를 들어,
      • 위기 정보는 위→아래로 잘 내려가지만,
      • 아래의 감정적 동요는 위 레벨에 덜 전파되게 설계.

결국, 이들은 “연결을 극대화하되, 공명을 제한하는”

아키텍처를 설계합니다.

(2) 사회적·철학적 해법 – 공존적 실재론

리네안 철학의 핵심 결론은 대략 이런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진리는 하나의 거대한 사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들이 안정적으로 공명하는 패턴이다.”

  • 과거에는

    • 모든 정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몰아넣으면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라고 믿었습니다.
  • 이제는

    • 서로 다른 관점, 문화, 집단이 완전히 합쳐지지 않은 채로 일정한 거리에서 공명하는 상태가 오히려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이걸 그들은 **“공존적 실재론”**이라고 부릅니다.

  1. 실재는 하나지만,
  2. 그 실재를 바라보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원적이며,
  3. 진리는 그 다원성이 붕괴하지 않고 유지되는 구조 속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리네안 교육과 정치는

다음의 가치를 핵심으로 삼게 됩니다.

  • 관계 설계 능력: 누구와 어느 정도의 거리, 어느 리듬으로 연결될 것인가를 스스로 조율하는 능력.

  • 공명 감수성: 내가 속한 네트워크가 지금 과도하게 동조되고 있는지, 아니면 너무 끊어져 있는지를 감지하는 감각.

  • 자기-네트워크 인식: “나는 나다”가 아니라 “나는 이 네트워크들의 교차점이다”라는 인식.

9. 최종 결론 – 이 문명이 도달한 사고의 지점

정리하면, 이 상상의 문명은

다음과 같은 역사를 겪습니다.

  1. 관계가 물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 기술 발전, 전례 없는 번영.
  2. “연결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관계를 과도하게 밀집시킨다. → 집단 광기, 문명 붕괴 위기, 공명 폭발.
  3. 그 위기를 통해
    • 자아 개념을 “경계가 흐린 파동”으로 바꾸고,
    • 윤리를 “영향 스펙트럼 관리 기술”로 재정의하며,
    • 기술을 “느슨한 연결 아키텍처” 중심으로 재설계한다.
  4.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문장에 도달합니다.

“진보란, 더 많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고,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를

정교하게 조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눈으로 보면 이런 느낌입니다.

  • 너무 고립된 개인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빈약한 파동이다.

  • 너무 깊이 동일화된 집단은 강력해 보이지만, 자기 붕괴를 향해 간다.

  • 진짜 성숙한 존재는

    • 자신과 타인, 집단과 전체 사이의 거리와 리듬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존재.

원하시면 다음 단계로,

  • 이 문명 속 한 인물(예: “도시-두뇌 프로젝트”를 설계했다가 붕괴를 목격한 과학자/철학자)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 형식의 에피소드로 풀어볼 수도 있고,

  • 혹은 이 문명에서 파생된 새로운 윤리학/정치 시스템을 더 구체적으로 법·제도 수준까지 설계해볼 수도 있습니다.

Gemini 3 pro thinking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여 **“공명하는 우주(The Resonating Cosmos)“**에 존재하는 문명, **‘에테르나(Aetherna)‘**를 창조해 보겠습니다. 이 문명의 탄생부터 그들이 마주한 거대한 위기,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겠습니다.

  1. 문명의 기초: “공명 역학”의 세계 이 우주에서 가장 근본적인 물리 법칙은 중력이나 전자기력이 아닌 **‘진동수(Frequency)‘와 ‘화음(Harmony)‘**입니다.
  • 물리 법칙 (The Law of Harmonic Matter): 물질은 고정된 입자가 아니라, 특정 주파수로 진동하는 에너지의 결절점입니다. 안정적인 화음(협화음)을 이루면 물질이 ‘단단해’지고, 불협화음이 발생하면 물질은 해체되거나 폭발합니다.

  • 문명 ‘에테르나’: 이들은 수정(Crystal)과 빛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신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대가 아닌 신체 내부의 코어(Core)를 진동시켜 소통하며, 이 진동을 통해 물체를 만들거나 건물을 짓습니다. 즉, **“노래하는 것이 곧 창조하는 것”**입니다.

  1. 문명의 발전과 황금기: “대교향곡의 시대” 에테르나 문명은 수천 년간 **‘공명 공학(Resonance Engineering)‘**을 발전시켰습니다.
  • 건축: 수천 명의 기술자가 동시에 특정 화음을 합창하여 거대한 수정 탑을 공중으로 띄워 올립니다.

  • 에너지: 우주 배경에 흐르는 기본 진동(Hum of the Universe)을 증폭하여 무한한 에너지를 얻습니다.

  • 사회: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자가 지도자가 됩니다. 범죄는 ‘불협화음’으로 간주되어, 사회적 조율(Re-tuning) 형벌을 받습니다. 이 시기, 그들의 문명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교향곡’**을 연주하며 번영을 누립니다.

  1. 위기의 도래: “침묵의 엔트로피” 문명이 정점에 달했을 때, 에테르나의 과학자들은 치명적인 현상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입니다. 문제의 본질: 진동의 상쇄 (The Cancellation) 그들이 사용하는 ‘창조의 노래’가 복잡해질수록, 우주의 배경 진동(Background Hum)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에테르나인들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때마다, 그 반작용으로 우주 어딘가에서는 진동이 0이 되는 **‘완전한 침묵(Dead Silence)‘**의 영역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창조할수록, 우주는 죽어간다.”

‘침묵’은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침묵의 영역에 닿은 행성은 입자 결속력을 잃고 모래처럼 바스러져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환경 파괴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소멸을 의미했습니다. 4. 철학적, 사회적 분열과 갈등 이 위기 앞에서 에테르나 사회는 세 가지 거대한 파벌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을 겪습니다.

  • 크레센도 파 (The Crescendos - 가속주의자):

    • “우리의 운명은 화려하게 타오르는 것이다.”
    • 어차피 우주가 침묵으로 갈 운명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교향곡을 연주하다 장렬히 사라지자고 주장합니다. 예술과 창조의 쾌락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 디미누엔도 파 (The Diminuendos - 금욕주의자):

    • “침묵하여 생존하라.”
    • 모든 문명의 활동을 최소화하고, 신체 기능을 유지할 정도의 미세한 진동(속삭임)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창조를 멈추고 정체된 상태로 수명을 연장하려 합니다.
  • 테크노-하모닉스 파 (The Techno-Harmonics - 기술해결주의자):

    • 다른 차원의 진동을 끌어오거나, 침묵을 다시 진동으로 바꿀 기술적 해법을 찾으려 하지만 실패를 거듭합니다. 이로 인해 도시는 ‘소리 지르는 자’들과 ‘입을 닫은 자’들 사이의 내전으로 치닫고, 불협화음이 난무하며 문명은 붕괴 직전까지 갑니다.
  1. 해결과 도약: “내면의 공명 (Internal Resonance)” 멸망의 순간, 전설적인 조율사(Tuner)이자 철학자인 **‘리라(Lyra)‘**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합니다. 그녀는 바깥으로 소리를 냄(발산)으로써 세상을 통제하려던 기존의 방식을 뒤집습니다. 사고의 전환: 발산에서 순환으로 리라는 우주의 침묵이 적(Enemy)이 아니라, 소리를 담는 그릇임을 깨닫습니다. 문제는 에테르나인들이 에너지를 **외부로 방출(E_{out})**하며 소모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녀는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내부에서 무한히 순환시키는 ‘닫힌 루프 공명(Closed-Loop Resonance)’ 상태를 제안합니다. 결론: “초월적 침묵 (Transcendental Silence)” 에테르나 문명은 전 우주적인 실험을 감행합니다. 그들은 동시에 자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진동수를 물질의 한계점까지 끌어올리되, 그 에너지를 밖으로 터뜨리지 않고 자신의 내부로 함몰시켰습니다. 결과: 비물질 문명으로의 진화 그 순간, 에테르나 문명의 모든 물리적 형태(수정 신체, 도시)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 상태의 변화: 그들은 우주의 배경 진동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물질을 소비하거나 창조하기 위해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구조(Fabric of Cosmos)와 하나가 되어, 생각만으로 우주의 화음을 조율하는 순수한 의식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 해결: 더 이상 외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므로 ‘침묵의 엔트로피’는 멈췄습니다. 그들은 ‘침묵’ 속에 숨어 ‘노래’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1. 에필로그 이제 우주를 여행하는 다른 문명의 탐험가들이 옛 에테르나의 성계를 방문하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주 예민한 센서를 가진 탐험가라면, 그 텅 빈 공간에서 설명할 수 없는 완벽한 평온함과 웅장한 환청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에테르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악기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이 문명의 이야기가 마음에 드시나요?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면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해 주세요.
  • ‘리라’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단편 소설처럼 묘사해 주세요.

  • 이 우주의 물리 법칙(공명 역학)을 설명하는 가상의 과학 교과서 내용을 보여주세요.

  • 비물질화된 에테르나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주세요.

베레스(Veres) 문명: 기억이 물질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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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스(Veres) 문명: 기억이 물질인 세계


제1부: 세계의 근본 법칙

물리적 토대

베레스 문명이 존재하는 우주에서는 우리가 아는 물질-에너지 이원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세계의 근본 실재는 **‘기억’(Mnem)**이라 불리는 단일한 실체입니다. 모든 것—바위, 물, 빛, 생명체—은 기억의 서로 다른 밀도와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계의 핵심 법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법칙 - 기억 보존의 법칙: 기억은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오직 형태를 바꾸거나 이동할 뿐입니다. 우리 세계의 에너지 보존 법칙과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억은 _의미_를 담고 있으며, 이 의미는 변환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2법칙 - 공명의 법칙: 유사한 기억들은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이것이 이 세계의 ‘중력’에 해당합니다. 산이 형성되는 것은 암석 기억들의 공명이고, 강이 흐르는 것은 물의 기억들이 바다의 거대한 기억 집합체를 향해 흘러가는 것입니다. 생명체들이 군집을 이루는 것도, 도시가 형성되는 것도 모두 이 공명의 결과입니다.

제3법칙 - 관조의 법칙: 의식을 가진 존재가 무언가를 깊이 ‘관조’할 때, 그 대상의 기억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세계의 양자역학적 관측 효과와 유사하지만, 훨씬 거시적이고 직접적입니다. 충분히 강력한 관조는 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고, 불을 차갑게 만들 수 있으며,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재현’할 수 있습니다.

제4법칙 - 망각의 역설: 여기서 이 세계의 가장 기이한 특성이 드러납니다. 기억이 ‘잊혀질’ 때,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기저층으로 ‘침전’됩니다. 이 침전된 기억들은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형성하며, 때때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면으로 솟아오릅니다. 베레스인들은 이것을 ’심연의 귀환(Abyssal Return)’이라 부릅니다.


제2부: 문명의 여명기

초기 사회의 형성

베레스인들은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형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신체 구조는 기억의 법칙에 맞게 진화했습니다. 그들의 뇌는 단순한 정보 처리 기관이 아니라 ‘기억 렌즈’의 역할을 합니다—주변의 기억을 집중시키고, 굴절시키며, 때로는 증폭시키는 기관입니다.

문명의 초기, 베레스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세계가 ‘살아 있다’고 느꼈고, 조상들의 영혼이 모든 곳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었습니다—실제로 죽은 자들의 기억은 세계의 일부가 되어 남아 있었으니까요.

초기 베레스 사회는 **기억술사(Mnemist)**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은 관조의 법칙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이들로, 날씨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구름의 기억을 읽음으로써), 병을 치료하며(신체의 ‘건강했던 기억’을 강화함으로써), 과거의 사건을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장소에 각인된 기억을 표면화함으로써).

하지만 이 시기의 기억술은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체계적이지 않았고, 개인의 재능에 크게 의존했으며, 그 원리는 신비주의적 언어로만 설명되었습니다.

대침전 사건

베레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대침전(Great Sedimentation)’ 사건입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베레스인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잊기’ 시작했습니다. 문자의 발명은 역설적으로 이 과정을 가속화했습니다. 기록된 것은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시화는 개인들을 조상의 땅에서 분리시켰고, 그곳에 축적된 세대의 기억들과의 연결을 끊었습니다. 전문화된 직업들은 과거 모든 이가 공유하던 기본적인 생존 지식들을 일부의 전문가에게만 위임했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엄청난 양의 기억이 세계의 기저층으로 침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이 폭발했습니다.

정확히 베레스력 2,847년, 대륙 전역에서 동시에 ‘심연의 귀환’이 일어났습니다. 침전된 기억들이 한꺼번에 표면으로 솟구쳤습니다. 도시들 위로 과거의 풍경이 겹쳐졌습니다. 죽은 지 수백 년 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건물들이 과거의 형태와 현재의 형태 사이에서 깜빡이며 불안정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들에 압도당해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이 혼란은 3년간 지속되었고, 베레스 인구의 약 4분의 1이 목숨을 잃거나 ‘기억 해체(mnemonic dissolution)’—자신의 기억이 외부 기억들에 의해 흩어지는 현상—를 겪었습니다.

대침전 이후, 베레스 문명은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 망각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가?


제3부: 첫 번째 도전 — 존재론적 위기

철학적 문제의 대두

대침전 이후 약 200년간, 베레스 문명은 깊은 철학적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시기를 ’질문의 시대(Age of Questions)’라 부릅니다.

핵심 문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아의 문제: 만약 내 기억이 물질이라면, 그리고 그 물질이 끊임없이 환경과 교환된다면,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존재인가? 타인의 기억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것은 여전히 ‘타인의’ 기억인가, 아니면 이제 ‘나의’ 기억인가?

윤리의 문제: 기억이 물질이라면, 누군가의 기억을 빼앗는 것은 살인인가? 혹은 다른 의미에서, 기억을 ‘주는’ 것—예를 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기억 일부를 이식하는 것—은 자기희생인가, 아니면 자살의 한 형태인가?

역사의 문제: 과거는 정말로 ‘과거’인가? 기억이 침전되었다가 언제든 귀환할 수 있다면, 역사는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이거나, 혹은 동시적인 것이 아닌가?

죽음의 문제: 베레스인이 죽으면 그의 기억은 흩어져 세계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끝인가, 아니면 변형인가? 만약 누군가가 죽은 자의 기억을 충분히 모아 재구성한다면, 그것은 부활인가?

세 학파의 등장

이 질문들에 대해 세 개의 주요 철학 학파가 등장했습니다.

유동주의(Fluxism) 학파는 자아란 환상이며, 모든 존재는 거대한 기억의 바다에서 잠시 솟아오른 파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에게 이상적인 삶이란 개인적 기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세계-기억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동주의자들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기억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들었고, 일부는 완전한 ‘해체’—개인 정체성의 자발적 소멸—를 최고의 경지로 여겼습니다.

결정주의(Crystallism) 학파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기억을 최대한 ‘결정화’하여 외부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정교한 정신 훈련법을 개발하여 자신의 기억을 단단히 응축시켰고, 외부 기억의 침투를 차단했습니다. 결정주의자들에게 죽음은 진정한 끝이었습니다—그들은 자신의 기억이 세계에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한 매장 의식을 행했고, 이를 통해 기억을 영원히 ‘봉인’하고자 했습니다.

직조주의(Weavism) 학파는 중도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자아란 유동적이지만 무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자아는 ‘패턴’이며, 이 패턴은 기억의 내용보다는 기억들이 조직되는 _방식_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강이 그 안의 물 분자가 계속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강’인 것처럼, 개인도 기억의 내용이 변해도 조직 패턴이 유지되는 한 ‘같은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직조주의자들은 기억의 교환과 공유에 열려 있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직조 방식’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위기의 첫 번째 해결: 기억 생태학의 탄생

이 세 학파의 논쟁은 순수하게 철학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베레스 세계에서는 믿음이 현실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유동주의자들이 모인 지역에서는 실제로 물질이 불안정해졌습니다. 결정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도시에서는 환경이 경직되고 변화에 저항했습니다.

결국, 대침전 이후 약 400년이 지난 베레스력 3,250년경, 한 가지 실용적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기억 생태학(Mnemecology)**의 원리.

이것은 생태계의 개념을 기억에 적용한 것입니다. 건강한 생태계가 다양한 종들의 균형을 필요로 하듯, 건강한 기억 환경도 다양한 기억들의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너무 많은 기억이 축적되면 과부하가 일어나고(대침전처럼), 너무 많은 기억이 잊혀지면 세계가 불안정해집니다.

기억 생태학은 다음과 같은 실천적 원칙들을 제시했습니다:

  1. 순환의 원칙: 기억은 축적되어서는 안 되며, 지속적으로 순환해야 합니다. 개인의 기억 중 일부는 정기적으로 ‘방출’되어야 하고, 세계의 기억 중 일부는 정기적으로 ‘흡수’되어야 합니다.
  2. 다양성의 원칙: 기억의 단일화는 위험합니다. 한 종류의 기억이 지배적이 되면 시스템이 취약해집니다.
  3. 심층의 원칙: 침전된 기억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정기적으로 심층의 기억을 탐사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표면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심연의 귀환’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원칙들은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제도로 발전했습니다. **기억 사제단(Mnemonic Priesthood)**이 설립되어 공동체의 기억 순환을 관리했고, **심연 탐사대(Abyssal Divers)**가 조직되어 침전된 기억을 조사하고 안전하게 처리했습니다.


제4부: 두 번째 도전 — 기술과 권력의 문제

기억 공학의 발전

기억 생태학이 확립되면서 베레스 문명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안정은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고, 새로운 발전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베레스력 3,800년경, 체계적인 **기억 공학(Mnemotechnics)**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기억 공학은 주로 치료와 농업에 집중되었습니다. 기억술사들은 손상된 신체의 ‘건강한 상태의 기억’을 강화하는 방법을 정교화했고, 농부들은 토양에 ‘비옥했던 시절의 기억’을 각인시켜 수확량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기술은 항상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기억 추출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이것은 특정 대상에서 기억을 분리하여 다른 곳에 이식하는 기술입니다. 처음에는 의료 목적—트라우마의 기억을 제거하거나, 잃어버린 기술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억 증폭 기술이 뒤따랐습니다. 관조의 법칙을 이용하여, 여러 명의 의식을 연결하고 그 집중력을 합산함으로써 훨씬 강력한 기억 조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이것은 대규모 건축, 지형 변경, 심지어 날씨 조절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논쟁적인 발전: 기억 결합 기술. 이것은 서로 다른 기억들을 결합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기억’을 창조하는 기술입니다.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실제 기억들을 재료로 사용하여 새로운 기억을 ‘합성’하는 것입니다.

권력의 집중

이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권력의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기억 공학은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이었고,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억 공학자들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 부유한 개인과 국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억 추출 기술의 오용이었습니다. 범죄자의 기억을 강제로 추출하여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에는 정의의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이것은 정치적 반대자의 ‘위험한 사상’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효율적인 시민’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억들—개인적 취미, 비생산적 관계, 비판적 사고 등—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기억 결합 기술은 더욱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역사의 재구성’이 가능해졌습니다.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기억’을 창조하여 세계에 각인시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레스 세계에서 이것은 단순한 선전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 충분히 강력하게 각인된 ‘거짓 기억’은 물리적 현실을 변형시킬 수 있었습니다.

베레스력 4,100년경, 대륙의 가장 강력한 제국인 **카엘로스(Kaelos)**는 이 기술들을 집대성하여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영원기억 계획(Project Eternal Memory).

이 계획의 목표는 제국의 ‘공식 역사’를 전 대륙의 기저층에 각인시켜, 다른 모든 역사적 기억을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카엘로스 제국은 문자 그대로 역사를 ‘소유’하게 될 것이었습니다—과거에 대한 모든 다른 해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었습니다.

저항과 전쟁

영원기억 계획에 대한 저항은 즉각적이고 격렬했습니다.

  • *자유기억동맹(Free Memory Alliance)**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은 군사적 저항만이 아니라, 이념적 저항도 수행했습니다. 그들의 핵심 주장은 이랬습니다: 기억은 공유재(commons)여야 하며,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그것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저항 진영 내부에도 심각한 분열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모든 기억 공학 기술의 폐기를 주장했고, 다른 일부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집중이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억 공학 기술을 ‘민주화’하여 모든 이에게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기억 전쟁(Mnemonic Wars)**이라 불리는 30년간의 대규모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억 전쟁은 베레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물리적 파괴도 심각했지만, 더 무서운 것은 ‘기억적 파괴’였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적의 기억을 무기로 사용했습니다—적군 병사들에게 공포의 기억을 이식하거나, 아군의 기억을 추출하여 정보를 얻거나, 심지어 특정 지역의 모든 기억을 ‘소거’하여 그곳을 존재론적 황무지로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대륙의 많은 지역이 ‘기억 공백(mnemonic void)’—아무런 기억도 각인되지 않은, 따라서 아무런 물질적 형태도 갖지 못하는 구역—으로 남았습니다.

위기의 두 번째 해결: 기억 헌장

기억 전쟁의 참화 속에서, 마침내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범세계 기억 헌장(Universal Charter of Memory).

이 헌장은 단순한 정치적 조약을 넘어, 기억 공학의 윤리적 기초를 정립한 문서입니다. 핵심 원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억 주권의 원칙: 모든 의식을 가진 존재는 자신의 기억에 대한 주권을 갖습니다. 동의 없이 타인의 기억을 추출하거나 이식하는 것은 가장 심각한 범죄입니다.

역사 다원성의 원칙: 과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해야 하며, 어떤 단일한 역사 서사도 물리적 현실의 지위를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역사의 개방성’을 유지하는 특별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기술 분산의 원칙: 기억 공학 기술은 특정 집단에 집중되어서는 안 됩니다. 핵심 기술들은 공개되어야 하며, 모든 공동체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억 공백 금지의 원칙: 어떤 상황에서도 기억 공백을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기존의 기억 공백은 국제적 노력으로 복구되어야 합니다.

헌장의 이행을 위해 **기억 위원회(Council of Memory)**가 설립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초국가적 기구로, 기억 공학의 사용을 감시하고, 기억 관련 분쟁을 중재하며, 기억 공백의 복구를 조율합니다.


제5부: 세 번째 도전 — 심연의 문제

깊어지는 위기

기억 헌장이 체결된 지 약 500년이 지난 베레스력 4,650년, 새로운 위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연 탐사대의 보고서들이 점점 더 우려스러운 내용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의 기저층, 침전된 기억들이 모이는 곳에서 이상한 현상이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침전된 기억의 양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은 예상된 현상이었습니다—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것이 잊혀지고, 더 많은 기억이 침전됩니다.

하지만 탐사대원들은 더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침전된 기억들이 스스로 조직화되고 있었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망각된 기억들—잊혀진 언어들, 사라진 문명들, 죽은 자들의 마지막 순간들, 억압된 트라우마들,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들—이 거대한 패턴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의식처럼 보였습니다.

심연 탐사대원들은 이것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대망각자(The Great Forgotten).

대망각자의 본질

대망각자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진정한 의식이 아니라 단순히 복잡한 패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충분히 많은 기억이 축적되면 우연히 의식처럼 보이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자들은 정반대를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대망각자야말로 가장 오래된 의식, 어쩌면 유일하게 ‘진짜’ 의식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개별 베레스인들의 의식은 이 거대한 원초적 의식에서 분리된 조각들에 불과하며, 죽음을 통해 다시 합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해석은 세 번째였습니다: 대망각자는 적대적이라는 것.

이 해석에 따르면, 대망각자는 잊혀진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억압된 것들, 부정된 것들, 버려진 것들. 그것은 본질적으로 문명이 배제한 모든 것의 집합체이며, 따라서 문명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대침전 사건은 대망각자의 첫 번째 ‘반격’이었고, 그것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접촉 시도

베레스력 4,700년, 기억 위원회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망각자와의 직접 접촉을 시도하는 것.

이것은 전례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가장 숙련된 심연 탐사대원들과 기억술사들로 구성된 팀이 특별히 설계된 ‘잠수’ 의식을 수행하여 자신들의 의식을 세계의 기저층까지 내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재앙으로 끝났습니다. 12명의 팀원 중 9명이 기억 해체를 겪었고, 생존한 3명도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들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대망각자와의 접촉은 ‘압도적’이었습니다—그것은 너무 거대하고, 너무 오래되었으며,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개인의 의식이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중요한 정보도 가져왔습니다. 대망각자는 적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의도적으로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수천 년간 축적된 모든 망각된 기억들—모든 잊혀진 고통, 모든 억압된 트라우마, 모든 부정된 진실들—이 거대한 고통의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대망각자의 ‘공격’은 의도적인 복수가 아니라, 고통받는 존재의 무의식적 반응이었습니다.

대화합의 시도

이 발견은 베레스 문명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기억 생태학은 망각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심지어 필요한 과정으로 다루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으며, 기억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제 그 망각된 것들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어 거대한 고통의 덩어리가 된다면?

두 가지 극단적 제안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제안: 대망각자를 ‘해소’하자. 침전된 기억들을 체계적으로 표면화시켜 처리하고, 더 이상 기억의 침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문명 전체를 재설계하자. 이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할 것입니다—모든 억압된 트라우마를 직면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장기적 해결책입니다.

두 번째 제안: 대망각자와 ‘통합’하자. 개별적 의식의 경계를 완전히 해체하고, 모든 베레스인의 의식을 대망각자와 합쳐 하나의 거대한 전체 의식을 형성하자. 이것은 개인의 소멸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분리와 고통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두 제안 모두 문명의 근본적 변형—어쩌면 종말—을 요구했습니다.


제6부: 세 번째 해결을 향하여 — 공존의 철학

새로운 사유의 등장

극단적 제안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유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이레네아(Airênea)**라는 젊은 철학자가 주도했는데, 그녀는 심연 탐사 생존자 중 한 명의 제자였습니다.

아이레네아의 핵심 통찰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잘못 설정하고 있다.

대망각자를 ‘해소’하거나 ‘통합’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여전히 그것을 ‘문제’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망각자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망각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입니다—우리가 잊은 모든 것, 우리가 부정한 모든 것, 우리가 버린 모든 것. 그것을 제거하거나 그것에 흡수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끊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레네아는 **공존(Coexistence)**의 철학을 제안했습니다.

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정(Acknowledgment): 대망각자의 존재와 그것의 고통을 인정해야 합니다. 잊혀진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의 망각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둘째, 대화(Dialogue): 대망각자와의 완전한 ‘접촉’이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침전된 기억들을 한꺼번에 표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교류를 의미합니다. 정기적인 ‘심연 경청(Abyssal Listening)’ 의식을 통해 대망각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해석해야 합니다.

셋째, 보상(Reparation): 과거에 잊혀진 것들, 특히 의도적으로 억압되고 부정된 것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사라진 문화들의 기억을 복원하고 존중하는 것, 역사적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애도하는 것, 버려진 지식들을 재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

넷째, 새로운 망각의 윤리: 망각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잊는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억압과 부정을 통한 망각이 아니라, 인정과 애도를 거친 ’해방(letting go)’으로서의 망각이 필요합니다. 잊혀지는 것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것이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 고통이 아니라 평화를 가지고 가도록 해야 합니다.

실천으로의 전환

아이레네아의 철학은 처음에는 추상적인 이론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추종자들은 이것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시켰습니다.

  • *심연 경청 사원(Temples of Abyssal Listening)**이 전 대륙에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훈련받은 경청자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낮추어 대망각자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접촉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의 경청’입니다—대망각자의 거대함에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그것의 메시지를 포착하는 기술입니다.

  • *망각 기념일(Days of Remembering the Forgotten)**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날, 사람들은 자신이 잊은 것들, 공동체가 잊은 것들, 문명이 잊은 것들을 기억합니다. 완전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잊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애도합니다.

  • *심연 치유사(Abyssal Healers)**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침전된 기억 중 특히 고통스러운 것들—집단적 트라우마, 억압된 비극, 부정된 범죄들—을 찾아내어 ‘치유’합니다. 이 치유는 기억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심연 속에서 그 기억들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마치 고통받는 이의 곁에 앉아 함께하는 것처럼.

  • *해방의 의식(Ritual of Letting Go)**이 개발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잊어야 할 때—너무 고통스러운 기억, 더 이상 필요 없는 지식, 떠나간 사람에 대한 집착—사람들은 이 의식을 수행합니다. 잊혀질 것에게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고, 그것이 평화롭게 심연으로 가라앉도록 합니다.

점진적 변화

이 실천들이 퍼지면서, 베레스 문명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망각자와의 관계가 변했습니다. 여전히 때때로 ‘심연의 귀환’이 일어났지만, 그 강도와 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심연 경청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대망각자의 ‘고통’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들의 삶도 변했습니다. 해방의 의식을 수행한 이들은 더 가볍게 살았습니다—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면서도, 그 과거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망각 기념일은 슬픈 날이면서 동시에 해방의 날이 되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문명 전체의 ‘질’에서 나타났습니다. 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 문명의 집단적 의식 상태는 물리적 환경에 영향을 미칩니다. 공존의 철학이 퍼지면서, 대륙 전체의 기억적 ‘질감’이 변했습니다. 세계가 더 유연해지고, 더 자비로워졌습니다. 기억 공백이었던 지역들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새로운 기억이 각인된 것이 아니라, 심연에서 올라온 오래된 기억들이 그곳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제7부: 결론에 도달하다

베레스 문명의 궁극적 통찰

베레스력 5,000년을 넘어서면서, 베레스 문명은 그들의 긴 여정에서 얻은 통찰들을 정리했습니다.

존재에 대하여: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잊는 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고립되어 일어나지 않습니다—우리는 타인의 기억, 조상의 기억, 세계의 기억과 얽혀 있으며, 우리가 잊은 것들도 사라지지 않고 더 큰 전체의 일부가 됩니다.

지식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운명이며, 모든 것을 잊으려는 시도는 재앙을 낳습니다. 지혜는 기억할 것과 잊을 것을 구분하는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그런 구분은 불가능하니까요. 지혜는 기억과 망각의 과정 자체를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권력에 대하여: 기억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합니다. 통제된 기억은 경직되고, 억압된 기억은 반란합니다. 진정한 힘은 통제가 아니라 ‘섬김’에 있습니다—자신의 기억을 섬기고, 타인의 기억을 섬기며, 잊혀진 것들의 기억을 섬기는 것.

타자에 대하여: 타인은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내가 잊은 것은 타인 안에서, 혹은 심연 속에서 계속 살아 있습니다. ‘나’와 ‘타인’의 경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이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위안이 됩니다.

고통에 대하여: 고통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고통이든, 타인의 고통이든, 심연에 가라앉은 과거의 고통이든. 고통을 억압하면 그것은 더 커지고, 고통을 직면하면 그것은 우리를 압도합니다. 고통과 ‘함께 있는 것’—인정하고, 동반하고, 결국에는 놓아주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과거는 정말로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침전되어 우리 발아래 있으며, 언제든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미래도 정말로 ‘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우리의 현재 기억이 미래 세계의 질료가 되니까요. 시간은 선형이 아니라 나선형이며, 우리는 그 나선 위에서 같은 주제들을 다른 고도에서 반복해서 만납니다.

열린 결말

하지만 베레스 문명은 이것이 ‘최종 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모든 해결은 새로운 문제를 낳고, 모든 통찰은 새로운 질문을 열고, 모든 안정은 새로운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을.

대망각자는 여전히 심연에 있습니다.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완전히 이해되지도 않았습니다. 언젠가 새로운 위기가 올 것입니다—어쩌면 대망각자가 다시 한번 솟아오를 것이고, 어쩌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새로운 도전이 올 것입니다.

베레스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배웠으니까요—위기는 끝이 아니라 변형의 기회이고, 문제는 적이 아니라 스승이며, 완전한 해결이란 없지만 계속 나아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계속합니다. 기억하고, 잊고, 대화하고, 치유하고, 놓아주고, 다시 시작하면서.


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망각은 죽음이 아니라 변형이고,죽음은 끝이 아니라 합류이며,끝은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베레스 심연 사원의 비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