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스(Veres) 문명: 기억이 물질인 세계

베레스(Veres) 문명: 기억이 물질인 세계
제1부: 세계의 근본 법칙
물리적 토대
베레스 문명이 존재하는 우주에서는 우리가 아는 물질-에너지 이원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세계의 근본 실재는 **‘기억’(Mnem)**이라 불리는 단일한 실체입니다. 모든 것—바위, 물, 빛, 생명체—은 기억의 서로 다른 밀도와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계의 핵심 법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법칙 - 기억 보존의 법칙: 기억은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오직 형태를 바꾸거나 이동할 뿐입니다. 우리 세계의 에너지 보존 법칙과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억은 _의미_를 담고 있으며, 이 의미는 변환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2법칙 - 공명의 법칙: 유사한 기억들은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이것이 이 세계의 ‘중력’에 해당합니다. 산이 형성되는 것은 암석 기억들의 공명이고, 강이 흐르는 것은 물의 기억들이 바다의 거대한 기억 집합체를 향해 흘러가는 것입니다. 생명체들이 군집을 이루는 것도, 도시가 형성되는 것도 모두 이 공명의 결과입니다.
제3법칙 - 관조의 법칙: 의식을 가진 존재가 무언가를 깊이 ‘관조’할 때, 그 대상의 기억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세계의 양자역학적 관측 효과와 유사하지만, 훨씬 거시적이고 직접적입니다. 충분히 강력한 관조는 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고, 불을 차갑게 만들 수 있으며,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재현’할 수 있습니다.
제4법칙 - 망각의 역설: 여기서 이 세계의 가장 기이한 특성이 드러납니다. 기억이 ‘잊혀질’ 때,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기저층으로 ‘침전’됩니다. 이 침전된 기억들은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형성하며, 때때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면으로 솟아오릅니다. 베레스인들은 이것을 ’심연의 귀환(Abyssal Return)’이라 부릅니다.
제2부: 문명의 여명기
초기 사회의 형성
베레스인들은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형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신체 구조는 기억의 법칙에 맞게 진화했습니다. 그들의 뇌는 단순한 정보 처리 기관이 아니라 ‘기억 렌즈’의 역할을 합니다—주변의 기억을 집중시키고, 굴절시키며, 때로는 증폭시키는 기관입니다.
문명의 초기, 베레스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세계가 ‘살아 있다’고 느꼈고, 조상들의 영혼이 모든 곳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었습니다—실제로 죽은 자들의 기억은 세계의 일부가 되어 남아 있었으니까요.
초기 베레스 사회는 **기억술사(Mnemist)**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은 관조의 법칙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이들로, 날씨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구름의 기억을 읽음으로써), 병을 치료하며(신체의 ‘건강했던 기억’을 강화함으로써), 과거의 사건을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장소에 각인된 기억을 표면화함으로써).
하지만 이 시기의 기억술은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체계적이지 않았고, 개인의 재능에 크게 의존했으며, 그 원리는 신비주의적 언어로만 설명되었습니다.
대침전 사건
베레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대침전(Great Sedimentation)’ 사건입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베레스인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잊기’ 시작했습니다. 문자의 발명은 역설적으로 이 과정을 가속화했습니다. 기록된 것은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시화는 개인들을 조상의 땅에서 분리시켰고, 그곳에 축적된 세대의 기억들과의 연결을 끊었습니다. 전문화된 직업들은 과거 모든 이가 공유하던 기본적인 생존 지식들을 일부의 전문가에게만 위임했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엄청난 양의 기억이 세계의 기저층으로 침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이 폭발했습니다.
정확히 베레스력 2,847년, 대륙 전역에서 동시에 ‘심연의 귀환’이 일어났습니다. 침전된 기억들이 한꺼번에 표면으로 솟구쳤습니다. 도시들 위로 과거의 풍경이 겹쳐졌습니다. 죽은 지 수백 년 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건물들이 과거의 형태와 현재의 형태 사이에서 깜빡이며 불안정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들에 압도당해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이 혼란은 3년간 지속되었고, 베레스 인구의 약 4분의 1이 목숨을 잃거나 ‘기억 해체(mnemonic dissolution)’—자신의 기억이 외부 기억들에 의해 흩어지는 현상—를 겪었습니다.
대침전 이후, 베레스 문명은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 망각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가?
제3부: 첫 번째 도전 — 존재론적 위기
철학적 문제의 대두
대침전 이후 약 200년간, 베레스 문명은 깊은 철학적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시기를 ’질문의 시대(Age of Questions)’라 부릅니다.
핵심 문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아의 문제: 만약 내 기억이 물질이라면, 그리고 그 물질이 끊임없이 환경과 교환된다면,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존재인가? 타인의 기억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것은 여전히 ‘타인의’ 기억인가, 아니면 이제 ‘나의’ 기억인가?
윤리의 문제: 기억이 물질이라면, 누군가의 기억을 빼앗는 것은 살인인가? 혹은 다른 의미에서, 기억을 ‘주는’ 것—예를 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기억 일부를 이식하는 것—은 자기희생인가, 아니면 자살의 한 형태인가?
역사의 문제: 과거는 정말로 ‘과거’인가? 기억이 침전되었다가 언제든 귀환할 수 있다면, 역사는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이거나, 혹은 동시적인 것이 아닌가?
죽음의 문제: 베레스인이 죽으면 그의 기억은 흩어져 세계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끝인가, 아니면 변형인가? 만약 누군가가 죽은 자의 기억을 충분히 모아 재구성한다면, 그것은 부활인가?
세 학파의 등장
이 질문들에 대해 세 개의 주요 철학 학파가 등장했습니다.
유동주의(Fluxism) 학파는 자아란 환상이며, 모든 존재는 거대한 기억의 바다에서 잠시 솟아오른 파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에게 이상적인 삶이란 개인적 기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세계-기억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동주의자들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기억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들었고, 일부는 완전한 ‘해체’—개인 정체성의 자발적 소멸—를 최고의 경지로 여겼습니다.
결정주의(Crystallism) 학파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기억을 최대한 ‘결정화’하여 외부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정교한 정신 훈련법을 개발하여 자신의 기억을 단단히 응축시켰고, 외부 기억의 침투를 차단했습니다. 결정주의자들에게 죽음은 진정한 끝이었습니다—그들은 자신의 기억이 세계에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한 매장 의식을 행했고, 이를 통해 기억을 영원히 ‘봉인’하고자 했습니다.
직조주의(Weavism) 학파는 중도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자아란 유동적이지만 무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자아는 ‘패턴’이며, 이 패턴은 기억의 내용보다는 기억들이 조직되는 _방식_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강이 그 안의 물 분자가 계속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강’인 것처럼, 개인도 기억의 내용이 변해도 조직 패턴이 유지되는 한 ‘같은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직조주의자들은 기억의 교환과 공유에 열려 있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직조 방식’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위기의 첫 번째 해결: 기억 생태학의 탄생
이 세 학파의 논쟁은 순수하게 철학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베레스 세계에서는 믿음이 현실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유동주의자들이 모인 지역에서는 실제로 물질이 불안정해졌습니다. 결정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도시에서는 환경이 경직되고 변화에 저항했습니다.
결국, 대침전 이후 약 400년이 지난 베레스력 3,250년경, 한 가지 실용적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기억 생태학(Mnemecology)**의 원리.
이것은 생태계의 개념을 기억에 적용한 것입니다. 건강한 생태계가 다양한 종들의 균형을 필요로 하듯, 건강한 기억 환경도 다양한 기억들의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너무 많은 기억이 축적되면 과부하가 일어나고(대침전처럼), 너무 많은 기억이 잊혀지면 세계가 불안정해집니다.
기억 생태학은 다음과 같은 실천적 원칙들을 제시했습니다:
- 순환의 원칙: 기억은 축적되어서는 안 되며, 지속적으로 순환해야 합니다. 개인의 기억 중 일부는 정기적으로 ‘방출’되어야 하고, 세계의 기억 중 일부는 정기적으로 ‘흡수’되어야 합니다.
- 다양성의 원칙: 기억의 단일화는 위험합니다. 한 종류의 기억이 지배적이 되면 시스템이 취약해집니다.
- 심층의 원칙: 침전된 기억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정기적으로 심층의 기억을 탐사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표면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심연의 귀환’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원칙들은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제도로 발전했습니다. **기억 사제단(Mnemonic Priesthood)**이 설립되어 공동체의 기억 순환을 관리했고, **심연 탐사대(Abyssal Divers)**가 조직되어 침전된 기억을 조사하고 안전하게 처리했습니다.
제4부: 두 번째 도전 — 기술과 권력의 문제
기억 공학의 발전
기억 생태학이 확립되면서 베레스 문명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안정은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고, 새로운 발전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베레스력 3,800년경, 체계적인 **기억 공학(Mnemotechnics)**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기억 공학은 주로 치료와 농업에 집중되었습니다. 기억술사들은 손상된 신체의 ‘건강한 상태의 기억’을 강화하는 방법을 정교화했고, 농부들은 토양에 ‘비옥했던 시절의 기억’을 각인시켜 수확량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기술은 항상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기억 추출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이것은 특정 대상에서 기억을 분리하여 다른 곳에 이식하는 기술입니다. 처음에는 의료 목적—트라우마의 기억을 제거하거나, 잃어버린 기술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억 증폭 기술이 뒤따랐습니다. 관조의 법칙을 이용하여, 여러 명의 의식을 연결하고 그 집중력을 합산함으로써 훨씬 강력한 기억 조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이것은 대규모 건축, 지형 변경, 심지어 날씨 조절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논쟁적인 발전: 기억 결합 기술. 이것은 서로 다른 기억들을 결합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기억’을 창조하는 기술입니다.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실제 기억들을 재료로 사용하여 새로운 기억을 ‘합성’하는 것입니다.
권력의 집중
이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권력의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기억 공학은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이었고,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억 공학자들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 부유한 개인과 국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억 추출 기술의 오용이었습니다. 범죄자의 기억을 강제로 추출하여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에는 정의의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이것은 정치적 반대자의 ‘위험한 사상’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효율적인 시민’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억들—개인적 취미, 비생산적 관계, 비판적 사고 등—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기억 결합 기술은 더욱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역사의 재구성’이 가능해졌습니다.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기억’을 창조하여 세계에 각인시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레스 세계에서 이것은 단순한 선전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 충분히 강력하게 각인된 ‘거짓 기억’은 물리적 현실을 변형시킬 수 있었습니다.
베레스력 4,100년경, 대륙의 가장 강력한 제국인 **카엘로스(Kaelos)**는 이 기술들을 집대성하여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영원기억 계획(Project Eternal Memory).
이 계획의 목표는 제국의 ‘공식 역사’를 전 대륙의 기저층에 각인시켜, 다른 모든 역사적 기억을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카엘로스 제국은 문자 그대로 역사를 ‘소유’하게 될 것이었습니다—과거에 대한 모든 다른 해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었습니다.
저항과 전쟁
영원기억 계획에 대한 저항은 즉각적이고 격렬했습니다.
- *자유기억동맹(Free Memory Alliance)**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은 군사적 저항만이 아니라, 이념적 저항도 수행했습니다. 그들의 핵심 주장은 이랬습니다: 기억은 공유재(commons)여야 하며,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그것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저항 진영 내부에도 심각한 분열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모든 기억 공학 기술의 폐기를 주장했고, 다른 일부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집중이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억 공학 기술을 ‘민주화’하여 모든 이에게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기억 전쟁(Mnemonic Wars)**이라 불리는 30년간의 대규모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억 전쟁은 베레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물리적 파괴도 심각했지만, 더 무서운 것은 ‘기억적 파괴’였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적의 기억을 무기로 사용했습니다—적군 병사들에게 공포의 기억을 이식하거나, 아군의 기억을 추출하여 정보를 얻거나, 심지어 특정 지역의 모든 기억을 ‘소거’하여 그곳을 존재론적 황무지로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대륙의 많은 지역이 ‘기억 공백(mnemonic void)’—아무런 기억도 각인되지 않은, 따라서 아무런 물질적 형태도 갖지 못하는 구역—으로 남았습니다.
위기의 두 번째 해결: 기억 헌장
기억 전쟁의 참화 속에서, 마침내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범세계 기억 헌장(Universal Charter of Memory).
이 헌장은 단순한 정치적 조약을 넘어, 기억 공학의 윤리적 기초를 정립한 문서입니다. 핵심 원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억 주권의 원칙: 모든 의식을 가진 존재는 자신의 기억에 대한 주권을 갖습니다. 동의 없이 타인의 기억을 추출하거나 이식하는 것은 가장 심각한 범죄입니다.
역사 다원성의 원칙: 과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해야 하며, 어떤 단일한 역사 서사도 물리적 현실의 지위를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역사의 개방성’을 유지하는 특별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기술 분산의 원칙: 기억 공학 기술은 특정 집단에 집중되어서는 안 됩니다. 핵심 기술들은 공개되어야 하며, 모든 공동체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억 공백 금지의 원칙: 어떤 상황에서도 기억 공백을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기존의 기억 공백은 국제적 노력으로 복구되어야 합니다.
헌장의 이행을 위해 **기억 위원회(Council of Memory)**가 설립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초국가적 기구로, 기억 공학의 사용을 감시하고, 기억 관련 분쟁을 중재하며, 기억 공백의 복구를 조율합니다.
제5부: 세 번째 도전 — 심연의 문제
깊어지는 위기
기억 헌장이 체결된 지 약 500년이 지난 베레스력 4,650년, 새로운 위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연 탐사대의 보고서들이 점점 더 우려스러운 내용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의 기저층, 침전된 기억들이 모이는 곳에서 이상한 현상이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침전된 기억의 양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은 예상된 현상이었습니다—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것이 잊혀지고, 더 많은 기억이 침전됩니다.
하지만 탐사대원들은 더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침전된 기억들이 스스로 조직화되고 있었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망각된 기억들—잊혀진 언어들, 사라진 문명들, 죽은 자들의 마지막 순간들, 억압된 트라우마들,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들—이 거대한 패턴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의식처럼 보였습니다.
심연 탐사대원들은 이것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대망각자(The Great Forgotten).
대망각자의 본질
대망각자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진정한 의식이 아니라 단순히 복잡한 패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충분히 많은 기억이 축적되면 우연히 의식처럼 보이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자들은 정반대를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대망각자야말로 가장 오래된 의식, 어쩌면 유일하게 ‘진짜’ 의식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개별 베레스인들의 의식은 이 거대한 원초적 의식에서 분리된 조각들에 불과하며, 죽음을 통해 다시 합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해석은 세 번째였습니다: 대망각자는 적대적이라는 것.
이 해석에 따르면, 대망각자는 잊혀진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억압된 것들, 부정된 것들, 버려진 것들. 그것은 본질적으로 문명이 배제한 모든 것의 집합체이며, 따라서 문명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대침전 사건은 대망각자의 첫 번째 ‘반격’이었고, 그것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접촉 시도
베레스력 4,700년, 기억 위원회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망각자와의 직접 접촉을 시도하는 것.
이것은 전례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가장 숙련된 심연 탐사대원들과 기억술사들로 구성된 팀이 특별히 설계된 ‘잠수’ 의식을 수행하여 자신들의 의식을 세계의 기저층까지 내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재앙으로 끝났습니다. 12명의 팀원 중 9명이 기억 해체를 겪었고, 생존한 3명도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들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대망각자와의 접촉은 ‘압도적’이었습니다—그것은 너무 거대하고, 너무 오래되었으며,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개인의 의식이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중요한 정보도 가져왔습니다. 대망각자는 적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의도적으로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수천 년간 축적된 모든 망각된 기억들—모든 잊혀진 고통, 모든 억압된 트라우마, 모든 부정된 진실들—이 거대한 고통의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대망각자의 ‘공격’은 의도적인 복수가 아니라, 고통받는 존재의 무의식적 반응이었습니다.
대화합의 시도
이 발견은 베레스 문명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기억 생태학은 망각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심지어 필요한 과정으로 다루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으며, 기억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제 그 망각된 것들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어 거대한 고통의 덩어리가 된다면?
두 가지 극단적 제안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제안: 대망각자를 ‘해소’하자. 침전된 기억들을 체계적으로 표면화시켜 처리하고, 더 이상 기억의 침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문명 전체를 재설계하자. 이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할 것입니다—모든 억압된 트라우마를 직면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장기적 해결책입니다.
두 번째 제안: 대망각자와 ‘통합’하자. 개별적 의식의 경계를 완전히 해체하고, 모든 베레스인의 의식을 대망각자와 합쳐 하나의 거대한 전체 의식을 형성하자. 이것은 개인의 소멸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분리와 고통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두 제안 모두 문명의 근본적 변형—어쩌면 종말—을 요구했습니다.
제6부: 세 번째 해결을 향하여 — 공존의 철학
새로운 사유의 등장
극단적 제안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유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이레네아(Airênea)**라는 젊은 철학자가 주도했는데, 그녀는 심연 탐사 생존자 중 한 명의 제자였습니다.
아이레네아의 핵심 통찰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잘못 설정하고 있다.
대망각자를 ‘해소’하거나 ‘통합’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여전히 그것을 ‘문제’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망각자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망각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입니다—우리가 잊은 모든 것, 우리가 부정한 모든 것, 우리가 버린 모든 것. 그것을 제거하거나 그것에 흡수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끊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레네아는 **공존(Coexistence)**의 철학을 제안했습니다.
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정(Acknowledgment): 대망각자의 존재와 그것의 고통을 인정해야 합니다. 잊혀진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의 망각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둘째, 대화(Dialogue): 대망각자와의 완전한 ‘접촉’이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침전된 기억들을 한꺼번에 표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교류를 의미합니다. 정기적인 ‘심연 경청(Abyssal Listening)’ 의식을 통해 대망각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해석해야 합니다.
셋째, 보상(Reparation): 과거에 잊혀진 것들, 특히 의도적으로 억압되고 부정된 것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사라진 문화들의 기억을 복원하고 존중하는 것, 역사적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애도하는 것, 버려진 지식들을 재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
넷째, 새로운 망각의 윤리: 망각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잊는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억압과 부정을 통한 망각이 아니라, 인정과 애도를 거친 ’해방(letting go)’으로서의 망각이 필요합니다. 잊혀지는 것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것이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 고통이 아니라 평화를 가지고 가도록 해야 합니다.
실천으로의 전환
아이레네아의 철학은 처음에는 추상적인 이론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추종자들은 이것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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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경청 사원(Temples of Abyssal Listening)**이 전 대륙에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훈련받은 경청자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낮추어 대망각자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접촉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의 경청’입니다—대망각자의 거대함에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그것의 메시지를 포착하는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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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기념일(Days of Remembering the Forgotten)**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날, 사람들은 자신이 잊은 것들, 공동체가 잊은 것들, 문명이 잊은 것들을 기억합니다. 완전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잊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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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치유사(Abyssal Healers)**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침전된 기억 중 특히 고통스러운 것들—집단적 트라우마, 억압된 비극, 부정된 범죄들—을 찾아내어 ‘치유’합니다. 이 치유는 기억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심연 속에서 그 기억들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마치 고통받는 이의 곁에 앉아 함께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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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의식(Ritual of Letting Go)**이 개발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잊어야 할 때—너무 고통스러운 기억, 더 이상 필요 없는 지식, 떠나간 사람에 대한 집착—사람들은 이 의식을 수행합니다. 잊혀질 것에게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고, 그것이 평화롭게 심연으로 가라앉도록 합니다.
점진적 변화
이 실천들이 퍼지면서, 베레스 문명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망각자와의 관계가 변했습니다. 여전히 때때로 ‘심연의 귀환’이 일어났지만, 그 강도와 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심연 경청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대망각자의 ‘고통’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들의 삶도 변했습니다. 해방의 의식을 수행한 이들은 더 가볍게 살았습니다—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면서도, 그 과거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망각 기념일은 슬픈 날이면서 동시에 해방의 날이 되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문명 전체의 ‘질’에서 나타났습니다. 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 문명의 집단적 의식 상태는 물리적 환경에 영향을 미칩니다. 공존의 철학이 퍼지면서, 대륙 전체의 기억적 ‘질감’이 변했습니다. 세계가 더 유연해지고, 더 자비로워졌습니다. 기억 공백이었던 지역들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새로운 기억이 각인된 것이 아니라, 심연에서 올라온 오래된 기억들이 그곳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제7부: 결론에 도달하다
베레스 문명의 궁극적 통찰
베레스력 5,000년을 넘어서면서, 베레스 문명은 그들의 긴 여정에서 얻은 통찰들을 정리했습니다.
존재에 대하여: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잊는 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고립되어 일어나지 않습니다—우리는 타인의 기억, 조상의 기억, 세계의 기억과 얽혀 있으며, 우리가 잊은 것들도 사라지지 않고 더 큰 전체의 일부가 됩니다.
지식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운명이며, 모든 것을 잊으려는 시도는 재앙을 낳습니다. 지혜는 기억할 것과 잊을 것을 구분하는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그런 구분은 불가능하니까요. 지혜는 기억과 망각의 과정 자체를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권력에 대하여: 기억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합니다. 통제된 기억은 경직되고, 억압된 기억은 반란합니다. 진정한 힘은 통제가 아니라 ‘섬김’에 있습니다—자신의 기억을 섬기고, 타인의 기억을 섬기며, 잊혀진 것들의 기억을 섬기는 것.
타자에 대하여: 타인은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내가 잊은 것은 타인 안에서, 혹은 심연 속에서 계속 살아 있습니다. ‘나’와 ‘타인’의 경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이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위안이 됩니다.
고통에 대하여: 고통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고통이든, 타인의 고통이든, 심연에 가라앉은 과거의 고통이든. 고통을 억압하면 그것은 더 커지고, 고통을 직면하면 그것은 우리를 압도합니다. 고통과 ‘함께 있는 것’—인정하고, 동반하고, 결국에는 놓아주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과거는 정말로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침전되어 우리 발아래 있으며, 언제든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미래도 정말로 ‘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우리의 현재 기억이 미래 세계의 질료가 되니까요. 시간은 선형이 아니라 나선형이며, 우리는 그 나선 위에서 같은 주제들을 다른 고도에서 반복해서 만납니다.
열린 결말
하지만 베레스 문명은 이것이 ‘최종 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모든 해결은 새로운 문제를 낳고, 모든 통찰은 새로운 질문을 열고, 모든 안정은 새로운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을.
대망각자는 여전히 심연에 있습니다.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완전히 이해되지도 않았습니다. 언젠가 새로운 위기가 올 것입니다—어쩌면 대망각자가 다시 한번 솟아오를 것이고, 어쩌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새로운 도전이 올 것입니다.
베레스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배웠으니까요—위기는 끝이 아니라 변형의 기회이고, 문제는 적이 아니라 스승이며, 완전한 해결이란 없지만 계속 나아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계속합니다. 기억하고, 잊고, 대화하고, 치유하고, 놓아주고, 다시 시작하면서.
기억이 물질인 세계에서,망각은 죽음이 아니라 변형이고,죽음은 끝이 아니라 합류이며,끝은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베레스 심연 사원의 비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