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9 유예된자들의 시간

Question to Opus 4.5
2. 죽음이 ‘선택적인 서비스’가 된 미래
가까운 미래, 의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죽음은 더 이상 ‘필연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원할 때 신청해서만 일어나는 선택적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특정 나이가 되면, “죽음을 연기”하거나 “죽음을 한 번 경험했다가 되돌아오는 옵션”을 고를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혹은 가족)을 중심으로,
- 죽음이 선택 사항이 되었을 때 무너지는 가치관,
- 세대 개념이 흐려졌을 때 생기는 사회·경제·윤리적 문제,
-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내리는 죽음에 대한 개인적 결단
을 깊게 파고들어, 철학적인 독백과 사회 묘사를 섞어 장편 에세이처럼 써 주세요.
유예된 자들의 시간
— 죽음이 선택이 된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서장: 마지막 장례식
내가 마지막으로 장례식에 참석한 건 2089년 겨울이었다.
할머니—정확히는 나의 증조모였다—께서 167세의 나이로 ‘최종 이행’을 신청하셨고, 가족들은 지정된 날짜에 ‘이별 센터’로 모였다. 그때 나는 서른일곱이었고, 아직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우리 세대는 그랬다. 죽음을 ‘알’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건 마치 우리 증조부모 세대가 천연두나 소아마비를 모르는 것과 같았다. 역사책에서나 읽는 것,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는 것, 어쩌다 선택한 사람들의 뉴스에서나 접하는 것.
증조모는 웃고 계셨다. 병상에 누워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는 것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건강한 육체로, 선명한 정신으로,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으며 작별 인사를 하셨다. 나는 그 손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차갑지 않았다. 떨리지도 않았다. 그저 평온했다.
“네 증조할아버지가 먼저 가셨을 때,” 증조모가 말씀하셨다. “나는 50년만 더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 손주들이 자라는 걸 보고, 증손주들 얼굴을 보면 그때 가야지. 그런데 그게 벌써 90년 전이구나.”
그분은 90년을 더 사셨다. 손주들이 자라는 걸 보셨고, 증손주들의 얼굴을 보셨고, 고손주들—나의 아이들—의 첫 걸음마까지 보셨다. 그리고 여전히 건강하셨다. 여전히 선명하셨다. 그런데도 떠나기로 ‘선택’하셨다.
“왜요?” 내가 물었다. 그건 당시 우리 세대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이었다. 죽을 필요가 없는데, 왜 죽음을 선택하는가?
증조모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셨다. 11월의 회색 하늘이 병실 창으로 들어왔다. 아니, 병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이별 센터’는 호텔처럼 꾸며져 있었고,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흘렀고, 벽에는 가족사진들이 디지털 액자로 순환하고 있었다.
“네가 이해하기엔…” 그분이 말씀하셨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거야.”
그로부터 48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여든다섯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1부: 끝나지 않는 것들
제1장 — 영속의 아침
2137년 4월 17일, 목요일.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오전 6시 23분. 이것은 생체 리듬 조절 임플란트 덕분이다. 130년 전이라면 ‘자연스러운 노화’로 수면 패턴이 무너졌을 나이지만, 이제 그런 건 선택의 문제다. 나는 젊은 수면 패턴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본다. 거울 속 얼굴은 생물학적으로 45세쯤 되어 보인다. 세포 재생 치료의 결과다. 실제 나이 여든다섯에 비하면 꽤 젊어 보이는 셈이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나이 들어 보이는’ 축에 속한다. 내 아들 민석이는 112세인데 서른 살처럼 보이고, 손녀 수아는 67세인데 스물다섯쯤으로 보인다.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외부인들은 누가 누구의 조상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다.
아침을 먹으러 거실로 나가면, 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는 올해 129세다. 외모는 나보다 젊어 보인다—35세 정도로 유지하고 계시니까. 어머니는 최신 미용 재생 치료에 관심이 많으시고, 나는 그런 것에 별 흥미가 없다. 그래서 모자(母子) 관계가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 내가 어머니의 아버지인 것처럼. 손님들이 오면 늘 혼란스러워한다.
“잘 잤니?” 어머니가 묻는다.
“네.”
“오늘 수아 생일파티인 거 기억하지?”
“네.”
손녀의 67번째 생일. 파티장에 가면 5세대가 한자리에 모일 것이다. 나의 어머니(129세), 나(85세), 내 아들 민석(112세), 민석의 딸 수아(67세), 수아의 아들 준호(41세), 준호의 딸 하은(12세). 여섯 세대가 살아있고, 모두 건강하다. 이론상으로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나의 할머니—도 살아계실 수 있었다. 올해 178세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150세에 ‘최종 이행’을 선택하셨다. 할머니의 어머니—증조모—처럼.
나는 가끔 생각한다. 왜 그분들은 떠났을까? 왜 그분들은 이 영속의 아침을 더 맞이하지 않기로 했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어머니와 나와 민석이와 수아와 준호는—여전히 여기 있을까?
제2장 — 탄생의 축제가 사라진 날
수아의 생일파티는 오후 3시에 시작됐다. 장소는 강남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개인 룸을 빌렸고, 여섯 세대의 가족들이 모였다. 20명이 조금 넘었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가족들을 바라봤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비슷했다. 최근 본 엔터테인먼트, 새로 나온 경험 시뮬레이션, 여행 계획. 아무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미래의 ‘끝’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끝은 없으니까. 끝은 선택이니까.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니까.
하은이—열두 살짜리 고손녀—가 내 옆에 앉았다.
“증조할아버지, 케이크 안 드세요?”
“조금 있다가.”
“증조할아버지는 케이크 싫어하세요?”
“아니, 좋아해. 그냥 지금은 배가 안 고파서.”
하은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해요. 수아 할머니가 67번째 케이크래요. 67개나 먹으면 질릴 것 같아요.”
나는 웃었다. “그럴 수 있지.”
“증조할아버지는 몇 번째 케이크예요?”
“85번째.”
“우와, 엄청 많다.”
그리고 하은이가 덧붙였다. “근데 이상해요. 케이크 먹는 건 많은데, 별로 특별하지 않아요. 그냥 또 일 년 지났구나, 이런 느낌이에요.”
열두 살짜리의 이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정확히 그거였다. 생일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67번째든, 85번째든, 129번째든. 그것은 단지 숫자의 증가일 뿐, 어떤 의미의 축적이 아니었다.
예전에 생일이 특별했던 이유가 뭘까?
나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2050년대, 내가 어렸을 때. 그때는 아직 ‘영속 프로토콜’이 도입되기 전이었다. 사람들은 죽었다. 병으로, 사고로, 노화로. 그래서 생일은 의미가 있었다. ‘내가 또 한 해를 살아냈다’는 안도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감사함. 생일 케이크의 촛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의 축하였고, 유한한 시간 속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에 대한 경축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존은 기본값이 됐다. 아무도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지 않는다. 살아남는 건 당연하니까. 생일은 그저… 날짜다. 캘린더에 표시된 하나의 숫자.
손녀 수아가 케이크 앞에 서서 촛불을 불었다. 67개의 촛불. 가족들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 박수에는 어떤 절박함도, 경이로움도 없었다. 의례적인 동작. 프로그램된 반응.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진정으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살아 있음’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제3장 — 세포 재생 클리닉에서
파티가 끝나고, 나는 일정이 잡혀 있던 클리닉에 들렀다. ‘영원회춘(永遠回春) 메디컬 센터’—거창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3개월에 한 번, 세포 재생 치료를 받는 것. 주사 몇 대와 30분 정도의 나노봇 순환 치료. 그게 전부다.
대기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외모 나이’의 사람들이 있었다. 스무 살쯤 보이는 여성(실제 나이는 아마 80대일 것이다), 오십 대 중반쯤 보이는 남성(실제 나이는 150대일 수도 있다), 열여섯쯤 보이는 소녀(이건 논란이 많다—미성년 외모 유지를 선택한 성인들에 대해). 그리고 나처럼 중년 외모를 선택한 사람들.
“김도윤 님?”
간호사가 불렀다. 나는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담당 의사는 젊은 남자였다—적어도 외모상으로는. 아마 서른 살쯤 보였다. 하지만 벽에 걸린 자격증을 보니, 의대 졸업이 2078년이었다. 그러니까 실제 나이는 최소 80대.
“오늘은 표준 치료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추가 옵션이 있으신가요?”
“표준으로요.”
“네. 잠시만요.” 그가 태블릿을 확인했다. “기록을 보니… 도윤 씨는 외모 나이를 45세 언저리로 유지하고 계시네요. 혹시 조정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요즘은 30대 초반 유지가 표준이 되어가고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직업적인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니면 개인적 취향?”
나는 잠시 망설였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사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왜 나는 ‘젊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걸까?
“그냥… 이 정도가 편해서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직업윤리상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다.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45세 외모를 유지하는 이유. 그건 아마도… 내 아들 민석이의 외모보다 늙어 보이고 싶어서일 것이다. 민석이는 30대 외모를 유지한다. 나는 그보다 나이 들어 보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아버지’라는 게 느껴지니까. 그래야 세상에 어떤 순서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얼마나 공허한 집착인가. 외모로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 내가 누구인지를, 내 주름과 흰 머리카락으로 증명하려는 것.
치료가 끝나고, 나는 클리닉을 나섰다. 밖은 저녁 무렵이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건강하고, 다들 아름답고, 다들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 사이를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죽음을 정복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잃었을까?
제4장 — 의미의 인플레이션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129세의 어머니. 나보다 44년 더 사신 어머니. 하지만 외모는 나보다 어리고, 체력도 나보다 좋다. 어머니는 열심히 관리하시니까.
나는 서재로 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래된 습관이다. 잠들기 전에 글을 쓰는 것. 일기장은 아니다. 그냥… 생각을 정리하는 것.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출판할 것도 아니다. 그저 쏟아내는 것.
오늘 쓴 것:
의미의 인플레이션에 대하여
경제학에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있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돈이 너무 많아지면, 돈 한 장의 가치가 떨어진다. 1만 원이 1만 원의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된다.
나는 비슷한 일이 ‘의미’에도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무한해지면서, 시간의 가치가 떨어졌다. 경험이 무한히 축적 가능해지면서, 개별 경험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예전에 첫사랑은 특별했다. 왜냐하면 생애 처음이었고, 제한된 시간 안에서 일어난 소중한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첫’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다. 첫 번째 결혼, 두 번째 결혼, 열 번째 결혼. 첫 번째 커리어, 두 번째 커리어, 스물 번째 커리어. 모든 ‘첫’이 있지만, 어떤 것도 진정한 ‘첫’이 아니다.
증조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나는 충분히 경험했어.”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경험이 ‘충분’할 수 있지? 항상 더 있을 수 있잖아?
이제 알 것 같다. 문제는 양이 아니다. 문제는 밀도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개별 순간들은 희석된다. 물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색깔이 보인다. 하지만 바다에 떨어뜨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바다에 사는 잉크 방울이 되었다.
글을 쓰고 나니 조금 나았다. 하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 요즘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우울증일까? 클리닉에 가면 감정 조절 치료도 받을 수 있다. 세로토닌 수치 최적화, 도파민 밸런싱. 많은 사람들이 받는다. 하지만 나는 받고 싶지 않다. 이 불편함이… 어쩌면 중요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 공허함이 말하려는 게 있을 것 같으니까.
창밖을 바라본다. 서울의 밤하늘. 별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 밝아서. 도시의 불빛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밤조차 정복했다. 어둠조차 선택 사항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어둠이 그리워졌다. 진짜 어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 그것이 예전에 삶이라고 불리던 것이 아닐까.
제5장 — 교수의 은퇴, 혹은 은퇴하지 않음
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아니, ‘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이다’라고 해야 할까? 이것도 복잡한 문제다.
나는 2082년에 교수가 됐다. 그때 나는 서른 살이었다. 정년은 65세였지만, 영속 프로토콜 도입 이후 ‘정년’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일할 수 있는 한 일하면 된다.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건강하니까.
문제는 직위다. 나는 55년 동안 교수였다. 그중 30년은 정교수였다. 하지만 내 위에 있던 선배 교수들도 여전히 있다. 그들 중 몇 명은 100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다. 학과장, 학장, 총장—이 자리들은 돌아가면서 맡지만, 실질적인 권력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다. 학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렇다.
젊은 학자들—외모가 아니라 실제로 젊은, 30대와 40대 학자들—은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위에 200년 경력의 거인들이 버티고 있다. 승진은 없다. 변화는 없다.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세대 간 정의와 영속 사회”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꽤 화제가 됐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오늘 아침, 학과 회의가 있었다. 신규 교수 채용 건이었다. 지원자 중 한 명은 외모가 스무 살쯤 보였지만, CV를 보니 박사 학위 취득이 2095년이었다. 42년 전. 그러니까 실제 나이는 최소 70대 중반. 그는 42년 동안 시간강사와 연구원을 전전했다. 자리가 나지 않으니까. 위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으니까.
회의에서 한 선배 교수가 말했다. “지원자 경력이 너무 짧아요. 50년은 돼야 성숙한 연구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50년. 예전 같으면 평생보다 긴 시간. 하지만 이제는 ‘경력 입문 단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이 시스템의 일부이니까. 나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나보다 젊은 사람들의 기회를 막고 있으니까.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떠나면 어떨까?
이 자리를 비우면 어떨까?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
제6장 — 아들과의 대화
저녁에 민석이가 찾아왔다. 112세의 아들. 외모는 서른 살. 그는 건축가다. 아니, 건축가’였다’가 더 정확할까. 최근에 또 전직했다. 이번에는 우주 도시 설계 쪽으로.
“아버지, 요즘 좀 힘들어 보여요.”
“그래?”
“네. 생일파티 때도 구석에만 계셨잖아요.”
“피곤했어.”
민석이가 나를 바라봤다. 112년을 산 아들. 그는 나를 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아버지, 저한테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민석아. 너는… 이 삶이 어때?”
“이 삶이요?”
“그냥. 계속 사는 거. 끝없이.”
민석이가 잠시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사는 거죠. 원래 사는 게 이런 거 아닌가요?”
“예전엔 안 그랬어.”
“예전이요?”
“내가 어렸을 때. 너도 어렸을 때. 그때는 죽음이 있었어. 사람들은 죽었고, 그래서 시간이 소중했어.”
민석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지, 그건… 좀 이상하게 들려요. 죽음이 있어서 좋았다는 건가요?”
“좋았다는 게 아니야. 그냥… 달랐다는 거야.”
침묵이 흘렀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민석이도 차를 마셨다.
“아버지.” 민석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생각’ 하시는 건 아니죠?”
‘그 생각’. 우리 세대의 완곡어법.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생각.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정말요?”
“정말.”
민석이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에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저는 아버지까지 잃고 싶지 않아요.”
나는 아들을 바라봤다. 112년을 산 아들. 이론상 그도 곧 300년, 400년, 500년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도 살아있을 수 있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민석아.” 내가 말했다. “네가 처음 태어났을 때, 내가 뭘 느꼈는지 알아?”
“뭐요?”
“두려움.”
“두려움이요?”
“응. 너무 작고, 너무 연약했거든. 네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려고 밤새 네 곁에 앉아 있었어.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때는 아기들이 죽을 수 있었거든. 영아 돌연사 증후군이라든가, 선천성 질환이라든가.”
민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자식을 키워봤으니까. 수아를.
“그 두려움이.” 내가 계속했다. “사랑이었던 것 같아. 너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게 너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거였어. 그런데 이제는… 그런 두려움이 없잖아. 너도 죽지 않을 거고, 나도 죽지 않을 거고.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어.”
“그게… 나쁜 건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몰랐으니까. 나쁜 건지, 좋은 건지. 그저 달라진 건지. 무언가가 사라진 건지.
민석이가 일어섰다. “아버지, 저 이만 갈게요. 내일 프로젝트 미팅이 있어서.”
“그래, 조심히 가.”
“아버지도 푹 쉬세요.”
아들이 떠나고,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세계. 상실의 가능성이 없는 세계. 그 세계에서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답을 알지 못했다.
2부: 멈춘 세계
제7장 — 역사의 정체
대학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변화의 부재다.
내 연구실은 55년 전과 거의 똑같다. 책장의 책들(종이책을 고집하는 건 나의 유별난 취향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캠퍼스, 복도의 냄새. 물론 세부적인 것들은 바뀌었다. 기술은 발전했고, 건물 몇 채는 새로 지어졌고, 학생들의 패션도 달라졌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학과의 구조, 권력의 분배, 지식 생산의 방식—은 거의 그대로다.
이것이 영속 사회의 역설이다. 무한한 시간이 주어지면 무한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변화가 멈춘다.
왜일까?
나는 이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기득권의 고착화. 예전에는 세대교체가 변화의 엔진이었다. 늙은 세대가 죽고,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주류가 됐다. 막스 플랑크가 말했듯이, “과학은 장례식 하나씩 진보한다.” 하지만 이제 장례식이 없다. 장례식이 없으니 진보도 없다.
둘째, 리스크 회피. 무한히 살 수 있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실패해도 회복할 시간이 있지 않냐고? 이론상 그렇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반대로 작용한다. 무한한 미래가 있으니, 지금 당장 모험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해도 되지”가 영원히 반복된다.
셋째, 경험의 포화. 200년, 300년을 살다 보면, 대부분의 것을 이미 경험한다. 새로움이 줄어든다. 그리고 새로움이 줄어들면, 변화에 대한 욕구도 줄어든다. “예전에도 비슷한 게 있었어”가 모든 혁신 제안에 대한 반응이 된다.
나는 철학을 가르치지만, 철학계 자체가 정체되어 있다. 새로운 사조? 없다. 새로운 대논쟁? 없다. 300년 전의 논의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분석철학—같은 학파들이 같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세부 주제는 바뀌었다. AI 윤리, 영속 사회의 철학, 우주 확장과 정체성 등. 하지만 근본적인 프레임워크는 그대로다.
어쩌면 모든 것이 이미 말해졌기 때문일까.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생각되었고, 우리는 그저 그것을 재배열하고 있을 뿐인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런 걸까. 변화가 두려우니까. 새로운 것이 불편하니까.
제8장 — 경제의 딜레마
오늘 신문(나는 아직 뉴스피드보다 텍스트 기사를 선호한다)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영속 경제의 역설: 무한한 노동력, 축소되는 소비”라는 제목이었다.
기사의 요점은 이랬다.
영속 프로토콜 초기에, 경제학자들은 낙관적이었다. 사람들이 죽지 않으니, 숙련된 노동력이 축적된다. 경험과 지식이 쌓인다. 생산성이 극대화된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도 나타났다.
첫째, 소비 감소.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상속이 줄어든다. 상속이 줄어들면, 부의 재분배가 줄어든다.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면, 소비 패턴이 왜곡된다.
게다가 무한한 미래가 있으면, 당장 소비할 유인이 줄어든다. “나중에 사도 되지.” 이것이 수십 년, 수백 년 반복되면, 경제 전체가 침체된다.
둘째, 일자리 부족. 노동력이 무한정 공급되지만, 일자리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자동화와 AI가 많은 일을 대체했고, 나머지 일자리는 이미 누군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떠나지 않는다.
기사에 따르면, 현재 ‘완전 실업률’—한 번도 취업한 적 없는 성인의 비율—은 23%다. 그리고 이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기본 소득, 창작 활동 지원, 우주 개발 프로젝트 등.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사람들이 죽지 않는 한, 일자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기사 말미에 한 경제학자의 인터뷰가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영속 경제가 지속 가능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인구 조절이 필요합니다. 출생률 제한이든, 자발적 이민이든, 아니면… 다른 방법이든.”
“다른 방법이 뭔가요?”
“자발적 최종 이행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발적 최종 이행을 장려하는 것.’
즉, 사람들에게 죽으라고 권하는 것.
물론 경제학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려”라고. “강제”가 아니라.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유의미할까? 경제적 압박, 사회적 압력, 문화적 분위기—이런 것들이 누군가를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정말 ‘자발적’인 걸까?
증조모가 떠오른다. 그분은 ‘자발적으로’ 최종 이행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결정에 어떤 외부적 요인이 있었을까?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자원을 차지하고 있다는 죄책감? 사회의 무언의 압력?
나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제9장 — 윤리위원회
오후에 ‘영속 윤리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나는 대학 대표로 참석한다. 분기마다 한 번, 영속 프로토콜과 관련된 윤리적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다.
오늘의 안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최종 이행 연령 제한’에 대한 것. 현재 법적으로 최종 이행은 성인(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제한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소 100세, 혹은 200세가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충분히 살아봤다’고 할 수 있으니까. 반면 다른 쪽에서는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언제 죽을지 결정할 권리는 본인에게 있다고.
나는 이 논쟁이 불편하다. 양쪽 다 논리가 있고, 양쪽 다 문제가 있다.
둘째, ‘사회적 압력에 의한 최종 이행’에 대한 것. 최근 몇 년간, 특정 집단에서 최종 이행 비율이 급증했다. 특히 장기 실업자, 경제적 빈곤층,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 이들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그 자발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위원회에서 한 사회학자가 발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최종 이행을 신청한 사람들의 60%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꼽았다. 40%는 ‘사회에 짐이 된다는 느낌’을 언급했다. 그리고 35%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함’을 들었다. (복수 응답 가능.)
“결론적으로.” 사회학자가 말했다. “현재의 최종 이행은 완전히 자발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구조적 압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누군가 반박했다. “그렇다면 최종 이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건가요?”
“금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신청 과정에서 더 엄격한 심리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조적 문제—실업, 빈곤, 고립—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논의가 이어졌다. 나는 대부분 듣기만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죽음이 선택이 된 세계. 하지만 그 ‘선택’은 정말 자유로운 걸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강제일까?
회의가 끝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저녁노을. 예전에는 이 광경이 아름다웠다.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날이 온다는 약속. 하지만 이제 그 약속은 무한하다. 끝없이 반복되는 노을. 의미가 희석된 아름다움.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제10장 — 기억의 무게
밤이 되면 기억이 찾아온다.
85년의 기억. 그것은 엄청난 양이다. 예전 같으면 한 사람이 평생 축적할 분량보다 많다. 하지만 영속 사회에서는 이것조차 ‘적은’ 편에 속한다. 어머니는 129년치 기억을 갖고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200년, 300년치 기억을 갖고 있다.
문제는 뇌의 용량이다. 인간의 뇌는 무한한 저장소가 아니다. 새로운 기억이 쌓이면, 오래된 기억은 밀려난다. 영속 프로토콜은 육체의 노화를 막을 수 있지만, 기억의 망각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 백업’을 한다. 중요한 기억을 디지털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운로드’해서 되새기는 것. 마치 외장 하드드라이브처럼.
나는 그 서비스를 쓰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망각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서일까.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과거가 현재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지만 가끔 두렵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까 봐. 아내의 얼굴, 아버지의 목소리, 유년 시절의 따뜻함.
아내. 지혜.
지혜는 내 첫 번째이자 유일한 아내였다. 우리는 2070년에 결혼했다. 내가 스물여덟, 지혜가 스물여섯이었다. 그때는 영속 프로토콜이 막 도입되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자 그대로.
하지만 지혜는 영속 치료를 거부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받았다. 나와 함께. 하지만 100세가 되던 해, 지혜는 치료 중단을 선언했다.
“도윤아.” 그녀가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않아.”
“왜?” 나는 물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건강했다. 왜 죽음을 선택하려고?
“설명하기 어려워.” 지혜가 말했다. “그냥… 충분해. 나는 충분히 살았어.”
그 후로 7년 동안, 지혜는 자연적으로 노화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주름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나는 여전히 50대 외모였고, 지혜는 빠르게 늙어갔다.
2097년, 지혜가 세상을 떠났다. 107세였다. 자연사였다—이 세계에서 거의 사라진 죽음의 형태.
나는 그 후로 40년 동안 혼자였다. 재혼 제안은 많았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혜가 있었던 자리에 다른 누군가를 넣을 수 없었다. 그 자리는 비어 있어야 했다. 그녀의 부재로 채워져야 했다.
오늘 밤, 나는 지혜의 사진을 꺼내 봤다. 2080년에 찍은 사진. 서른여덟 살의 지혜.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점점 희미해진다. 기억 백업을 하지 않은 대가다.
“지혜야.” 나는 혼잣말을 했다. “네가 왜 그랬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제11장 — 젊은 세대의 분노
대학에서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학생 시위대를 마주쳤다.
“영속 세대의 퇴진! 기회의 평등! 세대 간 정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 외모상으로는 이십 대. 실제 나이도 아마 이십 대일 것이다—진짜로 젊은 세대.
이 시위는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젊은 세대의 분노.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영속 사회에서 자랐지만, 정작 그 혜택은 누리지 못한다. 일자리는 없고, 기회는 없고, 모든 좋은 자리는 이미 누군가 차지하고 있다. 그 누군가는 100년, 200년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분노를 이해한다. 아니,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그 누군가’의 일원이다. 55년 동안 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 학자들의 기회를 막고 있는.
시위대 사이를 지나가는데, 한 학생이 나를 알아봤다.
“김도윤 교수님 아니세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맞아요.”
학생이 다가왔다. 피켓을 든 채로.
“교수님, 교수님도 이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시죠? 교수님이 쓴 논문 읽었어요. ‘세대 간 정의와 영속 사회’. 교수님도 저희 편이잖아요.”
편. 그 단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누구 편일까?
“논문을 썼다고 해서 편이 정해지는 건 아니야.” 내가 말했다. “나도 이 시스템의 일부니까.”
학생이 날카롭게 웃었다. “그러니까요. 교수님 같은 분들이 행동으로 옮기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로만 비판하지 말고.”
행동. 무슨 행동?
“무슨 뜻이지?”
“물러나는 거요. 자리를 비우는 거. 교수님이 퇴직하면, 누군가에게 기회가 생기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학생은 다시 시위대 속으로 돌아갔다. 구호가 이어졌다.
“기득권은 물러나라! 미래 세대에게 기회를!”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젊은 얼굴들. 분노로 가득 찬 눈동자들. 그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속 사회의 종결? 그건 불가능하다. 영속 치료를 금지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권리다.
기성세대의 자발적 퇴진? 누가 자발적으로 포기할까?
아니면… 자발적 죽음?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불쾌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세대 간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죽음이다. 늙은 세대가 떠나야 젊은 세대에게 자리가 생긴다.
하지만 그건 너무 끔찍한 논리 아닌가? 누군가에게 죽으라고 요구하는 것. 생존권보다 기회의 평등을 우선시하는 것.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너무 단순화된 사고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제12장 — 어머니와의 대화
집에 오니 어머니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뉴스 채널. 시위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오늘 학교에서 이거 봤니?” 어머니가 물으셨다.
“네. 직접 마주쳤어요.”
어머니가 한숨을 쉬셨다. “불쌍해. 젊은 애들이.”
“불쌍하다고요?”
“그래. 화가 많으니까. 화가 나면 힘들잖아.”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129세의 어머니.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쉰넷이었다. 그때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것이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이른 나이’다.
“어머니.”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왜 계속 사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뭐?”
“그냥 궁금해서요. 증조할머니는 167세에 가셨잖아요. 할머니도 150세에 가시고. 그런데 어머니는 계속 여기 계시잖아요. 이유가 뭔가요?”
어머니가 한참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웃으셨다. 씁쓸한 웃음.
“도윤아. 네가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왜요?”
“넌 항상 삶의 가치를 중시했잖아. 철학 교수가 된 것도 그래서 아니었니? 의미를 찾으려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 말이 맞았다. 나는 의미를 찾으려고 철학을 했다. 하지만 8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찾지 못했다.
“나는 말이야.”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솔직히 말하면, 이유가 없어. 그냥 죽는 게 무서워서야.”
“무섭다고요?”
“응. 죽음이 무서워. 네 증조할머니나 할머니는 용감했어. 그분들은 두려움을 넘어섰지. 하지만 나는… 못하겠어. 그냥 겁이 나.”
어머니가 잠시 말을 멈추셨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셨다.
“너는 어떠니? 두렵지 않니?”
두렵냐고. 나는 생각했다. 두려운가?
“잘 모르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두려움보다는… 궁금함이 큰 것 같아요.”
“궁금함?”
“네. 죽음 뒤에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을까. 아니면 뭔가 있을까.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는 뭘 보셨을까.”
어머니가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알고 싶지 않아. 궁금하지 않아. 그냥 여기가 좋아. 네가 있고, 민석이가 있고, 수아와 준호와 하은이가 있으니까. 다들 곁에 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 내가 말했다. “우리가 영원히 곁에 있을 수는 없잖아요. 언젠가는… 누군가 떠날 거잖아요.”
“그래서 가능한 한 오래 함께 있으려는 거야.”
“그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요? 영원히 함께 있는 게?”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셨다. 눈에 무언가가 스쳤다. 슬픔? 두려움? 아니면 이해?
“도윤아.”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 요즘 많이 힘들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었다.
“지혜가 보고 싶니?”
지혜. 그 이름이 나오자, 가슴이 아팠다. 40년이 지났는데도.
“네.” 내가 대답했다. “많이요.”
어머니가 내 손을 잡으셨다. 따뜻했다. 129세의 손. 하지만 외모는 35세.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
“지혜는 좋은 아이였어.”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 애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는 이해 못하지만. 그래도 그 애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어머니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머니가 잠시 생각하셨다. “모르겠어. 어쩌면 그 애는… 우리보다 더 많이 알았던 게 아닐까. 우리가 못 보는 걸 봤던 게 아닐까.”
나는 어머니 말을 곱씹었다. 지혜가 본 것.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3부: 결단의 시간
제13장 — 체험 센터
2137년 5월이 됐다.
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정보를 모으는 습관이 있다. 학자로서의 버릇이다. 그래서 ‘경계 체험 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경계 체험’은 영속 프로토콜이 도입된 이후 생겨난 서비스다. 죽음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물론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해 죽음의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임사체험을 인공적으로 유도한다고 할까.
센터는 강남의 한 빌딩 꼭대기 층에 있었다. 로비는 고급 호텔처럼 꾸며져 있었다. 안내 직원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체험 목적을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알고 싶어서요. 죽음이 어떤 건지.”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듣는 대답인 듯했다.
체험실로 안내됐다. 리클라이너 의자 같은 곳에 눕고, 헤드셋을 썼다. 기술자가 세팅을 확인했다.
“준비되셨나요?”
“네.”
“시작하겠습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 중단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상한 경험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그런데 그 어둠이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로웠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느낌.
그리고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의 햇살. 어머니의 미소. 아버지의 큰 손. 첫사랑의 설렘. 대학 합격의 기쁨. 지혜와의 만남. 결혼식. 민석이가 태어난 날. 지혜의 마지막 미소.
모든 순간이 동시에 존재했다. 과거와 현재의 구분이 없었다. 모든 것이 ‘지금’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이 왔다.
이것이 전부라는 것. 이 순간들이 나라는 것.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안도해서였다. 감사해서였다.
체험이 끝났다. 눈을 뜨니 천장이 보였다. 흰 천장.
기술자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목소리가 떨렸다. “괜찮아요.”
센터를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다들 바쁘게. 다들 영원히 살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들도 언젠가는 같은 것을 느낄 것이다. 그 평화를. 그 완전함을.
죽음은 공포가 아니었다.
죽음은 완성이었다.
제14장 — 지혜의 편지
집에 돌아와서, 나는 오래된 상자를 꺼냈다. 지혜의 유품을 담은 상자. 40년 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그 안에 편지가 있었다. 지혜가 떠나기 전에 쓴 것.
도윤에게.
이 편지를 읽을 때쯤, 나는 없겠지. 이상하다, 이렇게 쓰니까. 내가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 안 가. 하지만 곧 알게 되겠지.
당신이 왜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 알아. 우리는 행복했으니까. 건강했으니까. 왜 포기하느냐고, 왜 떠나느냐고, 당신은 계속 물었지. 나는 답하지 못했어.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시도해볼게. 당신을 위해.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 도윤아. 사랑은 영원이 아니야. 사랑은 유한함이야. 우리가 언젠가 헤어질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매 순간을 소중하게 만드는 거야.
당신과 결혼했을 때, 우리는 ‘영원히 함께’라고 말했어. 그때는 그게 진짜 영원이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달았어. 영원은 사랑을 죽인다는 걸. 끝이 없으면, 소중함도 없어. 마감이 없으면, 절박함도 없어.
나는 당신을 사랑해. 지금도. 항상 그랬어. 그리고 그 사랑을 완성하고 싶어. 영원히 질질 끌지 않고,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싶어.
부탁이 있어. 나를 따라오지 마. 적어도 지금은. 당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당신만의 시간이 필요해. 당신만의 깨달음이 필요해.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알게 될 거야. 그때 만나.
사랑해, 도윤.
지혜
편지를 읽고 나서,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지혜는 알고 있었다. 40년 전에 이미. 그녀는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을 그때 느꼈다. 나보다 먼저.
“지혜야.” 나는 빈 방에 대고 말했다. “이제 알 것 같아.”
제15장 — 가족 회의
일주일 후, 나는 가족을 모았다.
어머니(129세), 아들 민석(112세), 손녀 수아(67세), 증손자 준호(41세), 고손녀 하은(12세). 다섯 세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중요한 말이 있어서 다들 불렀어.”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모두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아버지, 설마…” 민석이가 말했다.
“응.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거 맞아.”
어머니가 눈을 감으셨다. 수아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준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하은이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증조할아버지, 뭐예요?” 하은이가 물었다.
준호가 하은이의 어깨를 잡았다. “하은아, 증조할아버지가… 먼 여행을 가실 것 같아.”
“여행이요? 어디요?”
“아주 먼 곳이야. 돌아오지 않는 여행.”
하은이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열두 살. 죽음에 대해 개념은 있지만, 직접 경험한 적은 없는 나이.
“왜요?” 하은이가 울먹였다. “왜 가요?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나는 하은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은이의 눈을 바라봤다.
“하은아. 증조할아버지가 설명해줄게.”
“싫어요. 듣기 싫어요.”
“잠깐만 들어줘. 네가 케이크 좋아하지?”
하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흘렀다.
“맛있는 케이크가 있어.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어. 그런데 만약 그 케이크를 평생, 영원히, 끝없이 먹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
하은이가 생각했다. “질릴 것 같아요.”
“맞아. 아무리 맛있는 것도 계속되면 질려. 삶도 그래. 증조할아버지는 오래 살았어. 아주 많이. 좋은 것도 많이 봤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 하은이 너도 만났지. 네가 태어났을 때, 증조할아버지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
하은이가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서 가장 기뻤어. 그리고 지금도 기뻐. 너랑 함께한 시간이. 하지만 모든 좋은 것에는 끝이 있어야 해. 끝이 있어야 소중해지거든.”
“하지만…” 하은이가 울었다. “저는 증조할아버지 더 보고 싶어요.”
“나도 그래. 나도 너를 더 보고 싶어. 하지만 알지? 증조할아버지가 항상 네 마음속에 있을 거야. 네가 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네가 책을 읽을 때마다, 네가 뭔가 좋은 일을 할 때마다, 증조할아버지가 너를 보고 있을 거야. 어딘가에서.”
하은이가 내 품에 안겼다. 작은 몸이 떨렸다.
민석이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왜요? 왜 지금이에요?”
나는 하은이를 안은 채로 아들을 바라봤다.
“민석아. 나는 85년을 살았어. 충분히 오래 살았어. 그리고 계속 살 수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계속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달라.”
“뭐가 달라요?”
“계속 사는 건 그냥… 존재하는 거야. 숨 쉬고, 먹고, 자고. 하지만 잘 사는 건 의미를 갖는 거야. 나는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겠어. 새로운 아침이 와도 기대가 없어. 새로운 해가 시작해도 목표가 없어. 그냥 무한히 반복되는 날들.”
“그게 나쁜 건가요? 평화로운 거 아닌가요?”
“평화와 공허는 달라, 민석아. 나는 평화롭지 않아. 공허해.”
민석이가 눈물을 흘렸다. 112세의 아들. 서른 살의 외모. 하지만 지금은 아이처럼 보였다.
“저는… 아버지 없이 어떻게 살아요?”
“살 수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 그리고 네 가족이 있잖아. 수아, 준호, 하은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나보다 너야.”
수아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도 이해가 안 가요. 할아버지가 떠나면, 저희는…”
“수아야.” 나는 미소 지었다. “네 증조할머니—지혜—도 같은 선택을 했어.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 하지만 이제 알아. 그분이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분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준호가 조용히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지지해드릴게요.”
모두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저도 생각해본 적 있어요. 영원히 사는 게 정말 살고 싶은 삶인가. 아직 결론은 못 내렸지만… 할아버지의 결정은 존중해요.”
나는 준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어머니가 드디어 입을 여셨다.
“도윤아.”
“네, 어머니.”
“네 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이랬어. 네 할머니가 떠났을 때도. 네 증조모가 떠났을 때도. 나는 항상 남았지. 보내는 쪽이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에도 나는 남는구나.”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미안해요. 어머니보다 먼저 가서.”
“미안하지 마. 너는 네 길을 가는 거야. 나는 내 길을 가는 거고. 우리 길이 다를 뿐이야.”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으셨다. 129년을 산 어머니. 딸도 보내고, 손자도 보내고, 이제 아들도 보내는.
“잘 가렴.” 어머니가 속삭이셨다. “잘 가.”
제16장 — 마지막 강의
최종 이행 날짜를 신청했다. 2137년 6월 30일. 내 86번째 생일 다음 날.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마지막 강의.
나는 철학과에 부탁해서 공개 강의를 열었다. 제목은 “죽음에 대하여”. 대강당은 만원이었다. 학생들뿐 아니라 동료 교수들, 외부 인사들도 왔다. 내가 ‘최종 이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퍼진 모양이었다.
강단에 섰다. 55년 동안 서왔던 자리. 마지막.
“오늘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청중이 조용해졌다.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려운 것? 피해야 할 것? 최대한 미루어야 할 것?”
나는 잠시 멈췄다.
“2천 년 전, 에피쿠로스는 말했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올 때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강력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영속 프로토콜이 도입된 후, 우리는 다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죽음이 선택 사항이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청중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저는 85년을 살았습니다. 그중 55년을 이 강단에서 보냈습니다. 철학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글을 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잃었습니다.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는 길이에 있지 않습니다. 밀도에 있습니다.”
나는 청중을 둘러봤다. 다양한 얼굴들. 다양한 나이들.
“무한한 시간은 축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시간 속에서, 개별 순간들은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할 필요가 없다’가 반복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자각할 때 비로소 진정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귀중해지고, 선택이 의미를 갖습니다.”
“영속 프로토콜은 이것을 앗아갔습니다. 죽음이 선택이 되면서,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오래 살았지만, 잘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있었지만,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희미합니다. 경험은 축적되었지만, 감동은 희석되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떠나기로.”
청중이 숨을 죽였다.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완성입니다. 저는 85년의 삶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마침표를. 더 이상 의미 없이 늘어지지 않고, 제가 원하는 순간에, 제가 선택한 방식으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나는 마이크에서 물러섰다. 육성으로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 잘 사십시오. 시간이 무한해 보여도, 각 순간은 유일합니다. 오늘 본 노을은 내일 볼 노을과 다릅니다. 오늘 나눈 대화는 내일 나눌 대화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 계십시오.”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도 선택의 순간이 올 것입니다. 계속할 것인가, 마무리할 것인가. 그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은 적이 아닙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어서 시작이 의미를 갖습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강당이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립 박수.
나는 눈물을 흘리며 강단에서 내려왔다.
제17장 — 전야
2137년 6월 29일. 내 86번째 생일.
가족들이 모였다. 이번에는 파티가 아니었다. 작별이었다.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한 가정식. 어머니가 직접 만드셨다. 된장찌개와 불고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것들.
“잘 먹겠습니다.”
모두 숟가락을 들었다. 평범한 식사. 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하은이가 내 옆에 앉았다. 일주일 전보다 침착해 보였다.
“증조할아버지.”
“응?”
“저도 많이 생각했어요. 증조할아버지가 하신 말씀.”
“그래? 무슨 생각?”
“케이크요. 맛있는 케이크. 계속 먹으면 질린다는 거.”
“응.”
“근데요. 저는 아직 안 질렸어요. 저는 아직 케이크 더 먹고 싶어요.”
나는 웃었다. “그래야지. 너는 아직 어리니까. 한참 더 먹어야지.”
“언제까지요?”
“네가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그게 언제예요?”
“모르겠어. 사람마다 달라. 어떤 사람은 빨리 알고, 어떤 사람은 오래 걸리고. 그건 네가 살면서 알아가는 거야.”
하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충분해요?”
“응. 나는 충분해.”
“다행이에요.” 하은이가 말했다. “배고프면서 떠나는 건 슬프잖아요.”
나는 하은이를 끌어안았다. 이 아이는 이해하고 있었다. 어른들보다 더.
식사 후, 나는 하나씩 작별 인사를 했다.
어머니에게: “어머니, 사랑해요. 항상 감사했어요.”
민석에게: “민석아. 네가 내 아들이어서 행복했어. 잘 살아.”
수아에게: “수아야.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 앞으로도 잘하렴.”
준호에게: “준호야. 네가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웠어. 네 앞길에 좋은 일만 있기를.”
하은에게: “하은아. 증조할아버지 잊지 마. 가끔 생각해줘.”
모두 울었다. 나도 울었다. 하지만 슬프지 않았다. 뭐랄까… 완전함을 느꼈다. 이것이 맞다는 확신.
밤이 깊어지고, 하나둘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만 남았다.
“도윤아.”
“네, 어머니.”
“내가 언젠가 갈 때, 네가 마중 나와줄래?”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럴게요. 약속해요.”
어머니가 미소 지으셨다. “그럼 됐어. 잘 가, 아들.”
“잘 계세요, 어머니.”
어머니가 나가시고, 나는 혼자 남았다.
창밖을 봤다. 별이 보였다. 서울 하늘에서 별이 보이다니. 기적 같았다.
아니, 기적이 아니었다. 그냥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보이는 것이었다. 평생 못 봤던 게 아니라, 안 봤던 것.
“지혜야.” 나는 빈 방에 말했다. “내일 만나.”
종장: 이행
2137년 6월 30일, 오전 10시.
‘이별 센터’는 48년 전과 같았다. 증조모가 떠나셨던 그곳. 고급스럽고 평화로운 공간.
가족들이 함께 왔다. 어머니, 민석, 수아, 준호, 하은. 다섯 세대.
담당 직원이 절차를 설명했다.
“먼저 대기실에서 마지막 가족 시간을 가지신 후, 본인만 이행실로 이동하시게 됩니다. 과정은 완전히 무통이며, 평화롭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냥 함께 있었다. 함께.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됐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직원이 말했다.
나는 일어섰다. 가족들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고마웠어. 다들.”
문을 열고 이행실로 들어갔다.
방은 밝았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침대는 부드러웠다.
나는 누웠다.
직원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물었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천장을 바라봤다. 흰 천장.
그리고 눈을 감았다.
어둠이 찾아왔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의 햇살. 어머니의 미소. 아버지의 큰 손. 첫사랑의 설렘. 지혜와의 만남. 민석이가 태어난 날. 수아의 졸업식. 준호의 결혼. 하은이의 첫 걸음.
모든 순간이 빛났다.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아.”
지혜였다.
“기다렸어.”
나는 그 목소리를 향해 걸어갔다.
에필로그: 남겨진 자들
2137년 7월 15일.
하은이는 학교에서 일기를 썼다.
오늘 엄마가 증조할아버지 사진을 보여줬다. 증조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사진이래. 증조할아버지가 스물여덟 살이었을 때, 증조할머니랑 결혼했대. 둘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주가 지났다. 처음에는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증조할아버지가 말씀하셨잖아. 케이크가 충분하면 그만 먹어도 된다고. 증조할아버지는 충분히 드셨대. 그래서 괜찮은 거래.
나는 아직 배고프다. 아직 케이크 더 먹고 싶다. 학교도 다니고 싶고, 친구도 더 만나고 싶고, 엄마아빠랑 더 있고 싶고. 그래서 나는 아직 안 갈 거다.
근데 언젠가는 나도 충분해질 것 같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100살? 200살? 500살? 모르겠다. 근데 그때 되면, 나도 증조할아버지처럼 평화롭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증조할아버지, 거기 케이크 있어요? 있으면 남겨놔요. 나중에 가서 같이 먹게.
하은이는 일기장을 덮었다.
창밖으로 노을이 보였다. 오늘의 노을. 내일과 다른 노을.
하은이는 그 노을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일을 기다렸다.
끝
후기: 작가의 노트
이 이야기는 죽음이 선택이 된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주제는 죽음이 아니라 삶입니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끝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영원히 산다면 매 순간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벼움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도윤의 선택은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성입니다. 85년의 삶을 충분히 살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요.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결론에 이를 필요는 없습니다. 어머니처럼 계속 살기를 선택하는 것도, 하은이처럼 아직 배가 고픈 것도,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압력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결정.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기를 바랍니다.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유한한 지금, 당신은 충분히 살고 계십니까?
오늘의 노을을 보십시오. 내일과 다른, 오늘만의 노을을.
2137년, 어느 겨울에